방전의 온도

by 이영미

새벽은 나를 깨우지 않는다.
그저 어둠이 밀려나는 틈새에서, 나는 이미 눈을 뜬 채로 다음 하루에 붙잡혀 있다. 출근이라는 말도 이제는 부드럽지 않다. 삶의 어깨를 잡아 흔드는 어떤 무거운 손 같다.


근무지가 바뀌고, 동선이 바뀌고, 하루의 흐름까지 뒤집혔다.
그 변화는 마치 내 몸속의 작은 나사들을 하나씩 느슨하게 만들었다. 체력이라는 건 결국 나이의 표정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나는 그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일을 향한 마음은 아직 살아 있다.
그게 문제다.
사랑이 남아 있는데 몸이 떠나는 관계처럼, 마음의 온도와 몸의 속도가 인연처럼 어긋나기 시작했다.


피로는 처음엔 가볍게 스며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침대 옆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그 눈치 없는 손님을 쫓아내지 못한 채로 버텼다.


에너지음료는 잠깐의 환상이고, 약은 잠시의 위로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힘’이 아니라 ‘회복력’이라는 걸 깨닫는 데엔 시간이 걸렸다.


휴대폰은 케이블 하나로 100%가 된다. 내 몸은 어디에 꽂아야 다시 살아날까.
그 단순한 질문 앞에서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젊을 땐 잠만 자도 부활하듯 일어났었다.
그 시절의 나는 스스로가 고갈될 거라 상상조차 못 했다.
피로는 잠으로 정리되고, 열정은 아침마다 새로 생성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시절은 뒤에서 조용히 문을 닫았다.
나는 그 사실을 듣지 못했다.
아직도 열리길 바라는 사람처럼 억지로 손잡이를 잡고 흔들고 있었을 뿐이다.


가장 잔인한 순간은 이것이다.
몸은 이미 멈췄는데, 마음은 아직 달리고 있다는 것.
그 간극에서 생기는 서늘함은 피곤함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건, 붕괴의 전조다.


나는 최근에서야 이 상태를 ‘방전’이라고 이름 붙였다.
지침보다 더 깊고, 피곤함보다 더 묵직하고, 멍해진 시선 속에 들어오는 낯선 정적이 있었다.
이 정적은 ‘멈춰야 한다’는 신호이자, ‘더는 밀어붙이지 마라’라는 경고다.


쉬는 일을 미루는 데 나는 상상 이상으로 능숙했다.
휴식은 권리가 아니라, 죄책감과 함께 찾아오는 사치라고 여겨왔다.
그러니 충전이 이루어질 리 없었다.
나는 쉬지 않은 채로 버티는 것을 ‘강함’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회복은 재능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방식은 나이가 들수록 더 정교해야 한다.
예전의 속도를 그리워하는 대신, 지금의 몸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단지 지친 게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많은 것을 홀로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이해한다.
잠시 멈추어 서는 행위는 패배가 아니라
다음 발을 내딛기 위해 인간이 허락받은 가장 조용한 용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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