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 우리 가족은 남포동에 있는 부산극장으로 향했다.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영화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영화를 좋아하셨다. 주말이면 ‘주말의 명화’를 놓치지 않았고, TV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오면 자연스럽게 볼륨을 조금 높이셨다. 그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가끔 아버지는 부엌 한쪽에 놓인 작은 동전통에서 돈을 꺼내 우리를 동네의 작은 영화관으로 데려가셨다. 아마도 어머니의 비상금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말없이 표를 사고, 손에 쥘 수 있을 만큼의 과자를 사주셨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면 늘 웃고 계셨다. 그 웃음 하나로 하루가 정리되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조금 달랐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 모두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한 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남포동 번화가 한가운데 있는 부산극장이었다. 극장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매표소를 바라보며 잠시 서 계셨다. 생각보다 비싼 표 값 때문이었는지, 잠깐 계산기를 두드리듯 주머니를 더듬으셨다. 그 짧은 망설임이 지금도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내 아버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표를 샀고, 괜히 어깨를 한번 펴고 우리를 앞장서서 이끌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버지도 늘 여유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우리가 함께 본 영화가 E.T였다.
솔직히 말하면,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쭈글쭈글한 외계인은 무서웠고, 아이들이 왜 그 외계인을 감싸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달을 배경으로 자전거가 날아오르던 장면에서 극장 안이 잠깐 술렁였던 것만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날의 나는 스크린보다 옆자리가 더 신경 쓰였다.
아버지는 영화 내내 조용히 앉아 계셨다.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도, 나눈 말도 없다. 다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 사실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영화가 끝나고 우리는 곧장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당면과 김밥을 나눠 먹었다. 좁은 골목에 사람 소리와 웃음이 뒤섞었다. 그 한가운데서 아버지는 말없이 우리를 바라보다가, 가끔 웃으며 천천히 음식을 드셨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창밖을 보며 앉아 계셨고,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매표소 앞에서 잠시 멈칫하던 그 순간이 겹쳐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날이 오래 남을 기억이 될 거라는 것도, 그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도.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E.T는 이별에 관한 영화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이별을 몰랐고, 아버지가 곁에 있는 시간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보다, 극장을 나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깊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기억 속의 E.T는 외계인 영화가 아니다.
아버지가 잠시 망설였던 극장 앞, 나란히 앉아 있던 시간,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아무 말 없이 이어지던 저녁까지 모두 포함된 기억이다.
지금도 E.T를 떠올리면, 달을 가르던 자전거보다 먼저 그날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표를 쥔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앞장서 걸어가던 그 뒷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