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탄력성

by 이영미

몇 해 전, 점장 역량 과정 교육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그때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만 했다.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회복탄력성은 늘 위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고, 나는 아직 그 한가운데에 서 있지 않다고 믿었다.


성과가 좋을 때 조직은 누구나 단단해 보인다. 말이 많지 않아도 일이 굴러가고, 리더십을 증명할 기회조차 없다. 문제는 흐름이 꺾였을 때다. 매출이 내려가고, 사람이 빠지고, 분위기가 무거워질 때. 그 순간부터 리더는 숫자가 아니라 자신의 얼굴로 조직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어디서 흐름이 막혔는지도 안다.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무엇을 끝까지 지켜야 하는지도 이미 정리돼 있다. 그럼에도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를 ‘상황’ 탓으로 돌려보지만, 실은 내가 그 결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내려놓는 선택, 누군가의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선택 앞에서 나는 생각보다 오래 머뭇거린다. 그 망설임이 조직원들에게 보일까 봐, 리더로서의 흔들림이 들킬까 봐 마음이 먼저 조급해진다.


2025년 12월. 조직원들과 연수 자리에 앉아 말을 고르다 결국 삼킨 날이 있었다.

“지금 우리 조직은 매출과 사람 모두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문장은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대신 더 무난한 이야기를 선택했다. 영업장을 채운 것은 짧은 박수와 애매한 표정들이었다.


그 무렵 우리 조직은 부산지점에서 매출 실적이 가장 낮은 상태였고, 열아홉 명이 근무해야 할 자리에 열다섯 명만 남아 있었다. 숫자는 말보다 정직했다. 불안은 이미 조직 전체에 퍼져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비로소 알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결정을 내린 뒤에 남게 될 침묵이었다는 것을.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는 실망할 수 있고, 누군가는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모든 반응을 피하지 않고 견뎌야 하는 자리가 바로 리더의 자리라는 것을.


그때부터 회복탄력성은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다시 일어나는 능력이 아니라, 결정을 미루는 나 자신을 더 이상 합리화하지 않는 태도.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달리게 만드는 조급함을 인정하는 일.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그 시간을 감내하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나는 아직 회복탄력성이 좋은 리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 하나를 선택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리더가 되지 않겠다는 것, 단기적인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결정을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선택으로 누군가는 실망할 것이고, 누군가는 떠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침묵이라면, 이제는 그 무게를 감당하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새벽에 일어난다. 거창한 다짐은 아니다. 다만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부터 마주하고 싶었다. 새벽기도를 하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은 무엇을 지킬 것인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 완벽한 답은 여전히 없지만, 적어도 질문을 피하지는 않는다.


회복탄력성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상처와 위기를 밀어내지 않고, 그 대가까지 끌어안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조금씩 생겨난다. 나는 지금 그 과정 한가운데에 있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불안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리더의 회복탄력성이란, 흔들리지 않는 힘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선택을 미루지 않는 용기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선택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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