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라는 이름의 나

by 이영미

마음이 편하지 않고 이유 없이 조마조마한 상태를 우리는 불안이라 부른다.

아무리 옆에서 괜찮다고 말해줘도, 상황이 충분히 안정적이라고 설명해도, 내 마음이 흔들리면 그것은 그대로 불안이다. 불안의 기준은 언제나 외부가 아니라, 내 안 깊은 곳에 있다.


그래서 불안은 고집스럽다.

타인의 위로는 참고할 뿐, 최종 결정은 늘 내 마음이 내린다.


불안을 다루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약에 기대고, 누군가는 종교의 힘을 빌린다. 어떤 선택은 삶을 지탱해 주지만, 어떤 선택은 오히려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든다. 그만큼 불안은 흔하고, 또 쉽게 다뤄지지 않는 감정이다.


돌이켜보면 불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내 곁에 있었다.

어린 시절,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무서워 웅변학원에 다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때의 나는 ‘잘 말하고 싶다’기보다 ‘떨지 않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그때도 이미 불안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불안에도 익숙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더 조용해졌고, 더 정교해졌다.


2025년 12월 인사이동으로 새로운 곳에 왔다.

나는 이곳에서 나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스스로의 문제점도 빠르게 정리하고 싶었다.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한 달이라는 시간 안에 내가 기대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조급함은 곧 불안이 되었고, 나는 그 불안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겨우 한 달이라고. 모든 걸 다 바꿀 수는 없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그 말들이 틀리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새벽기도를 시작했다.


늘 그랬다.

나는 한 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걸친 채 살아왔다. 필요할 때, 간절할 때만 하나님을 찾았다. 오늘의 새벽기도도 그 연장선에 있다. 믿음이 깊어졌다기보다는, 불안이 너무 선명해졌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며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간절한가. 54세, 30년을 근무한 직장.

이제 와서 나는 무엇을 더 바라고 있는 걸까.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일을 사랑한다’는 말로 감싸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내 불안의 정체는, 지금까지 쌓아온 커리어에 금이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는 실패 자체보다 ‘흔들리는 나’를 견디지 못해 왔던 것 같다.

잘해왔다는 자부심,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확신. 그 균형이 무너질까 봐 나는 불안해했던 것이다.


불안은 결국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인정에 목말라 있는지, 얼마나 스스로에게 엄격한지, 그리고 여전히 얼마나 잘하고 싶은 사람인지.


이제는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이렇게 묻고 싶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잘해야 하는가.

조금 늦어도, 잠시 흔들려도 괜찮은 나를 나는 허락해 본 적이 있었는가.


불안은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목소리에 끌려가지 않고, 곁에 앉아 조용히 들어줄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오늘의 새벽기도는 불안을 없애달라는 부탁이 아니었다.

이 불안을 안고 있는 나를, 조금 더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달라는 마음에 가까웠다.


애써 답을 내리지 않아도,

지금의 나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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