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by 이영미

시간은 차별하지 않는다.

그 어떤 신분도, 그 어떤 사정도 묻지 않는다.

부자에게도, 권력자에게도,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에게도 시간은 똑같이 주어진다. 하루 스물네 시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가장 공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시간일 것이다.


우리는 늘 공평과 공정을 말한다.

뉴스를 통해 불공정한 사건을 접하고, 누군가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과 남이 가진 것을 비교하며,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기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공평은 늘 외부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불합리는 언제나 누군가의 잘못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그렇지 않다.

시간은 누구에게도 더 주어지지 않고, 누구에게도 덜 주어지지 않는다.

같은 하루를 살고,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그 사실 앞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다.


이 공평함을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매일 목격한다.


스물세 살의 아들은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나이지만, 몸을 깨우고 시간을 단련한다.

결과는 없고 가능성만 남아 있다. 그럼에도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한다.


쉰을 훌쩍 넘긴 남편 역시 하루의 첫 시간을 차지한다.

이미 성과와 자리를 가진 사람임에도, 그는 여전히 조직에서 가장 먼저 불을 켠다.

더 늦게 와도 되는 위치지만, 가장 이른 시간에 도착한다.

그의 시간 위에는 선택의 여유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가 놓여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간을 산다. 그러나 시간의 무게는 다르다.

아들의 시간은 미래로 향하고, 남편의 시간은 이미 쌓아온 결과를 견뎌낸다.

같은 하루, 같은 새벽이지만 그들이 감당하는 시간의 밀도는 결코 같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간절히 외치는 공평과 공정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정말로 사회와 제도, 타인의 몫일까.

아니면 내가 쓰지 못한 시간, 미뤄온 선택, 외면해 온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닐까.


시간은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각자가 선택한 하루들을 고스란히 결과로 남길뿐이다.

같은 시간을 살아도 어떤 이는 앞으로 나아가고, 어떤 이는 제자리에 머문다.

그 차이는 재능이나 환경보다도,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왔는가에 더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시간을 탓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늘 바쁘고 늘 시간이 부족하다.

하루는 빽빽하게 흘러가는데, 눈에 띄는 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쉽게 말한다.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시간이 문제라고.


나는 안다.

시간이 공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시간의 무게를 내가 온전히 견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공평은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것이고, 공정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의 나는 그 공평한 시간을 아직 증명하지도, 제대로 살아내지도 못한다.

그래서 불안하다.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마음은 모르는 것보다 더 무겁게 나를 누른다.


시간은 오늘도 같은 속도로 흐른다.

나의 불안과 망설임과 상관없이 시간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 글은 다짐이 아니라 고백이다.

이미 답을 알고 있음에도 아직 그 답만큼 살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


나는 오늘도 완벽하지 않다.

다만, 시간을 핑계로 삼지 않으려 애쓰며 내가 감당해야 할 하루의 무게 앞에 다시 선다.


시간은 여전히 말없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오늘도, 다시 증명해야 할 나 자신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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