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람을 알아보는 기준

by 이영미

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일 때문에 만났고, 생활 속에서 만나왔고, 그렇게 수없이 스쳐왔다.

특히 30대에서 50대 사이, 가정과 생계를 동시에 끌고 가는 주부들을 많이 만난다.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도 모르게 기준이 생겼다.

사람을 알아보는, 아주 개인적인 기준이다.


나는 한동안 그 기준을 꽤 신뢰했다. 말 몇 마디, 대화의 방향, 침묵의 길이만으로도

이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 믿음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사람을 잘 보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을 오래 보다 보면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 가족의 이름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사람,

현재를 지나쳐 늘 과거의 장면에 머무는 사람.

조금 더 단단해 보이기 위해 자신을 덧칠하는 사람도 있고,

끝내 마음의 윤곽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차이를 성격으로 단정하기보다, 각자가 삶을 건너오며 익혀온 서로 다른 표현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신호들을 기준 삼아 관계의 깊이를 조절해 왔다.


그런데 그 기준에서 완전히 빗나간 사람이 있었다.

그분은 예순을 넘긴 평범한 주부였다. 말은 단정했고, 감정의 기복도 크지 않았다.

과장된 표현도 없고, 불필요한 자기 연출을 하지도 않았다.

늘 원칙을 지켰고, 주변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분은 큰 굴곡 없이 안정된 삶을 살아온 사람일 거라고.

마치 오래전부터 잘 정돈된 집 안에서 흔들림 없이 살아온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그 단정함은 안정이 아니라, 방어였다는 걸.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분은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사업이 무너지면서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 일을 계기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연고 하나 없는 부산으로 내려와

삶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해야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하며 오랜 시간을 버텨왔다고.

그럼에도 그분은 자신의 삶을 누구의 탓으로도 돌리지 않았다.

설명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내가 사람을 잘 본다고 믿었던 그 기준이

사실은 나를 편하게 해주는 방식이었을 뿐이라는 걸.

나는 그 기준으로 사람을 이해한 게 아니라,

그 기준 안에 사람을 미리 넣어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나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한 번 더 멈춘다.

이 사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너무 쉽게 단정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래도 기준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다.

사람은 언제나 예측을 벗어나고, 관계는 늘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나만의 기준으로 사람을 만난다.

다만 예전처럼 확신하지는 않는다.


지금의 기준은 사람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 나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기준에 가깝다.

이 기준이 맞는지 따지기보다, 이 기준이 나를 가두고 있지는 않은지를 더 자주 묻는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끝내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사람을 만난다.

잘 보려고 애쓰기보다, 함부로 보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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