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떨어져서 더 행복한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나의 복직하는 해와 맞물려 있었다.
교사인 나는 육아휴직 3년과 간병휴직 3년을 모두 사용해서 더 이상 휴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는 해에 나는 고등학교 교사로 복직을 했다.
일하는 나를 대신해서 나의 아이는 활동 보조 선생님에게 맡기고 아이의 오후 치료 스케쥴과 이동을 대신해 주셨다. 아이를 활동 보조 선생님께 맡기었지만, 아이의 바뀐 스케쥴이나 치료를 어떻게 할지 시간을 조정하고 일정을 바꾸는 것은 엄마가 할 일이었다.
6시 반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7시 반에 출근하고 종일 아이들과 4교시에 해당하는 수업을 하고 업무를 하고 나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집에 와서는 저녁을 준비해서 먹이고 아이와 일과를 정리하느라 하루살이처럼 살았던 것 같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 여유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었음을 고백한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6개월이 지났을 때 활동 보조 선생님의 건강이 안 좋아져 더 이상 아이를 맡기 어렵다고 말씀하셨다.
이 아이를 또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 나는 너무 당황했다.
싫고 좋고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를 새로운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너무 큰 변화였기에 나는 눈물이 계속 났다. 일해야 하는데 이 아이를 누구에게 맡겨야 하지 아이를 봐주실 선생님을 찾아 열 군데도 넘는 기관에 연락처를 남겨두었다.
기존 활동 보조 선생님이 그만두고 새로운 선생님이 맡았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두 번째 만난 선생님은 4개월 정도 되었을 때 유방암임을 알게 되어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두 번의 선생님을 거치고 나서야 3번째 만난 선생님께서 아이를 맡아주시기로 하셨다.
세 번째 선생님의 차로 치료실을 이동하다 보니 장거리 노선을 줄이고 선생님이 다닐 수 있는 노선으로 치료실을 변경하며 세 번째 선생님께서 아이를 맡기기로 했고 그때로부터 2년 정도 아이를 애정 있게 돌봐주셨다. 그래서 아이는 아직도 세 번째 활동 보조 선생님을 좋아한다.
일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마음은 매우 무거웠다.
일반적인 아이들도 돌보미 선생님들이 맡기 힘들어하는데 나의 아이는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말을 잘하지 못하고 표현을 잘 못 하는 나의 아이를 맡기기에 믿을만한 어른이 필요했다.
활동 보조 선생님은 아이를 예뻐해 주셨고 아이도 선생님을 잘 따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활동 보조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치료실을 설명해드려야 하고 치료 일정을 다시 점검하느라 당황한 적이 많았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를 맡기고 출근해야 하는 많은 엄마가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마음은 무거웠지만, 학교에서 나는 행복했다.
6년 동안 잊고 지냈던 나라는 존재감이 있었고 아이들에게 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으며 나를 좋아해 주는 아이들의 관심과 애정에서 나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학교에 가면 장애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괜찮은 교사인 내 모습이 나 자신의 효능감을 자극했고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가르치는 부분은 새벽까지 공부해가며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기가 더 쉬울지 고민했다. 학교에서 맡은 업무로 인해 퇴근하고도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하기도 하고 주말에는 쉬지도 못하고 교재를 제작하거나 교재연구를 했지만 나는 정말 행복했다.
내가 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엄마로서도 교사로서도 나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를 맡아주신 활동 보조 선생님들 덕분에 나의 하루를 살아 낼 수 있었다.
내 책임인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출근한다는 것이 마음은 무거웠지만, 아이와의 관계는 더 좋았다.
아이와 종일 같이 있으면서 감정 상하지 않았고 저녁에 잠깐 만나기 때문에 나의 인내력의 역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작은 탠트럼에도 나는 크게 동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삶을 살고 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게 되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나는 교사로서 아이는 활동 보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이런 삶을 살 것 같다.
아이와 24시간을 붙어있는 것만이 아이를 위하는 길은 아니다.
내가 내 자식을 보면 감정적으로 되는 것처럼 내 자식의 치료에 필요한 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집에 왔을 때 내가 아이에게 사랑을 더 주는 것이 어쩌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필요하다.
지금은 아이에게 ‘엄마가 활동 보조 선생님 할까?’라고 물어보면 아주 난리가 난다.
‘엄마 활동 보조 선생님 싫어요~ 엄마는 대중교통도 안타고 자동차 타고 다니고 싫어요~ 오지 마세요~ 나는 활동 보조 선생님과 대중교통 타고 싶어요~’라며 큰 소리로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난다.
나의 속마음과 같기 때문이다.
나도 다른 자식 가르치러 가는 게 더 좋거든~~ ^^
너만 그런 건 아니란다.
우리는 각자 조금 떨어져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