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태도
두 돌 이후 치료를 시작했을 때 나의 마음은 일 년 정도 언어치료를 하고 나면 내 아이는 정상 범주에 들어갈 것이고 그러면 나에게도 행복한 일상이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아이가 정상이 되는 것이 내가 행복한 길이고 그것이 나의 목표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나의 아이는 두 돌부터 중학생인 지금까지 치료를 매우 열심히 했고 금전적 정신적으로 많은 치료를 했지만, 여전히 자폐 스펙트럼인 아이로 정상 범주에 들지 못했다.
그럼 나는 지금이 불행할까? 그렇지 않다.
나는 아이가 자폐 스펙트럼 범주여도 행복하다.
그건 내가 행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아이는 여전히 자폐 스펙트럼인 아이이지만 어제보다 오늘 조금씩 성장하고 있고 발전하고 있고 배우고 있으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기보다는 아이가 조금씩이라도 발전되는 부분을 칭찬해준다.
행복은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가 행복하기로 마음먹는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내가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 중에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들로 나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또 어떤 면에서는 마치 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인생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리막길을 걷는다고 해서 울면서 내려가기보다는 내리막길 옆에 있는 꽃 한 송이를 보며 웃으면서 내려가고 싶고 예쁜 단풍 나무길을 걸으면서 현재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
바뀌지 않는 상황에 불평하고 힘들어하기보다는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시간을 소중한 추억으로 만들고 싶다.
그게 내가 행복을 선택한 이유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어려움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찾아온 어려움은 처음 맞이해보는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었다.
헌신적인 부모님 밑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랐고 사범 대학을 졸업하고 24살에 임용고사에 바로 붙어 교직 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찾아온 낯선 일이었다.
나는 엄마로서 이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아야 했고 좋다는 치료는 적극적으로 돈과 시간을 들여서 해주었으며 나의 교직 생활에서 6년의 휴직을 하며 아이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어느 부모에게나 이런 아이가 온다면 아이를 위해 인생을 살 것으로 생각한다.
나에게 다가온 불행과 어려움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많이 울고 원망한 적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평범하게 잘 크는 것 같은데 왜 나에게는 장애 아이가 온 거지?
내가 무얼 잘못했나? 살면서 죄를 많이 지어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누구 탓을 할 수 없는 억울함이 가슴에 가득 찬 시기도 있었다.
세례를 받았던 성당도 냉담을 하며 당분간 가지 않았다.
나는 열심히 착하게 산 것 같은데 아픈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지나온 시간이 쉽지는 않았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울고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아이를 위해 여러 치료과정을 지내왔고 그렇다고 나의 아이가 정상 범주의 아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 이 정도의 발전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던져진 어려움이나 문제를 탓하며 울고 있기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이건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나 동일하다.
내게 던져진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문제에 대한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게 아니라면 그 문제는 나에게 던져진 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과 고민을 하지 않고 최대한 에너지를 적게 쓰며 받아들인다.
내게 주어진 선택에만 집중하고 그렇다면 나에게 온 공을 어떻게 던질지를 고민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이게 내가 장애 아동을 키우면서 그리고 삶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반복한 일들이다.
이 아이와 함께하면서 던진 많은 공들 중에 골대를 지나가지 못한 공이 있을 수 있다.
잘못 던진 공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해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해보고 이 길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에 다를 방향으로 공을 던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해 후회를 더 많이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일단 해보는 거다.
후회하더라도 후회가 적은 것이 한 행동에 대한 후회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14년을 지내고 나니 아기같이 귀여웠던 순간들은 없고 어느덧 나보다 더 큰 장성한 중학생이 옆에 있다. 되돌아보니 아기같이 귀여웠던 날들을 좀 더 즐겁게 보내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지금 같은 마음으로 그 시기를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은 치열하게 치료실을 다니느라 나 자신의 행복을 선택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라도 행복을 선택하고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