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아이들과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다 '원더(wonder)'를 골랐다. 책으로 먼저 읽고, 영화를 찾아봤는데, 아이들이 보기에 쉽고, 생각할 만한 지점이 많아 옳다구나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 영화나 음악을 반복해서 감상하다 보면 이전과 다른 지점에서 감흥을 받게 되는데 오늘은 영화 초반부의 '관성의 법칙'을 설명하는 장면이 그랬다. 과학시간에 '한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 언제까지? '라는 물리 선생님의 질문에 어기(주인공)가 '외부의 힘이 가해지기 전까지.'라고 답하는데, 카메라는 어기를 중심으로 양갈래로 지나가는 학생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아무리 수업 시간에 답을 잘해도 얼굴의 상처가 있는 주인공의 삶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도였으려나. 그리고 카메라는 체육 시간에 여러 학생들에게 공으로 얻어맞고 있는 어기의 모습을 다시 비춰주는데, 배경음악과 함께 물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이 깔린다.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와 방향은 외부의 힘으로만 변화할 수 있다."라고.
관성의 법칙.
어떤 물체는 자신의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영원히? 아니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그 물체의 운동 상태는 변한다. 멈춰있는 물체는 계속 멈춰 있으려 하고, 한 방향으로 이동 중인 물체 역시 계속 같은 방향과 속도로 이동하려고 하지만, 외부에서 그 물체에 힘을 주면 멈춰 있던 물체가 움직이기도 하고, 한 방향과 특정 속도로 이동 중이던 물체가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거나 멈추기도 한다.
나 같은 옛날 사람에게 사과하면 떠오르는 인물인 뉴턴이 발견한 자연법칙 중 첫 번째 법칙이다. 흔히들 차를 타고 가면서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가 줄어들 때 우리의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을 설명하는 법칙으로 널리 알려져 있어 이제는 '관성'을 물리학 용어로써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용어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한 가정의 생활비 지출을 갑자기 줄일 수 없고, 어느 조직이 삐걱대며 돌아가도 개선하기 쉽지 않으며, 한 번 들인 습관을 바꾸기가 매우 어려울 때 '관성'을 이용해 변화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동의한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않겠는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니까 자연의 법칙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모든 물체는, 아니 인생은 항상 멈춰 있거나 가던 방향과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가? 영원히? 위에서 말했듯, 아니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변화한다.
그런 관성을 이겨내려면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할까. 다시 관성의 법칙으로 돌아가 보자.
당황하지 말자. 나도 물리에서 손 뗀 지 오래라 기억에 의존해 설명할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다시 물리 공부를 할 건 아니니까 내가 아는 수준에서 설명해 보자면, 우선 a는 가속도의 약자인데, 어떤 물체의 운동 상태를 뜻한다. a=0이면 그 물체는 현재의 상태를 유지 중이고, a가 0이 아니라면 반대로 현재의 상태가 변화 중이란 뜻이다. F는 힘, 위에서 얘기했던 외력, 즉 외부에서 물체에 가하는 힘을 말한다. 마지막 m이 중요한데, 보통 관성 질량으로 부르지만, 편하게 '질량'이라고 하자. a와 F의 →는 벡터값을 의미하는데 방향이라고 하자.
F가 0이면 a도 0이 된다. 즉 외부의 힘이 0이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F가 변화하면 a 역시 변화하는데 이때 비로소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화한다. 그럼 아까 했던 질문. 얼마만큼의 힘이 필요할까. 그건 m 즉 질량에 달려 있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질량이 큰 물체를 움직이게 하려면 큰 힘이 들고, 가벼운 물체는 쉬이 움직일 수 있지 않은가.
m은 질량이다. 가볍고 무거움. 또는 짧거나 긴 시간, 개인의 습관에서 사회의 구조까지.
무거운 물체는 한 번 움직이기도 어렵지만, 한 번 움직인 물체는 정지시키거나 방향을 틀기도 어렵다. 덩치가 큰 조직일수록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라 해도 한 번 자리 잡은 틀, 고정관념 또는 관행을 어쩔 수 없이 유지한다. 어렸을 적부터 흡연했던 사람은 당장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받고도 답배 한 개비에 목숨을 건다.
결국 m은 그 사람의 성격이고 성향이며 때로는 가치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금방 자신의 습관을 고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이는 인생이 걸린다 해도 고집을 피운다. m이 달라서다. m이 작은 사람은 자신의 사소한 실수, 부모님의 잔소리 등으로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바꿀 수 있지만, m이 큰 사람은, 그 정도는 어림없고, 시험이나 사업의 실패, 실직 때론 죽음에 이르는 큰 외력이 작용해야 변화가 가능하다.
물론 m이 작으면 귀가 얇고 사람이 가볍다는 평을 받기 쉬울 거고, m이 크면 고집불통, 오만불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닐 테니, 뭐가 옳고 그른지 말하는 게 어불성설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옳다 생각해서 사과 한 마디 제대로 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의 실수를 알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위치, 입장 또는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될 일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영화 '베테랑'에서 형사 역의 '황정민'이 최상무에게 따지던 대사,
"당신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그냥 미안합니다. 한 마디면 될 일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커질 수가 있지?.."
곱씹어 보니 황정민이 내가 아니라 최상무, 조태오가 나 아니었는가.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며 막연하게 괜찮을 거라며 자위하는 나.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면 으레 그랬듯이 컴퓨터를 켜고, 유튜브를 열고 깔깔 거리며 여러 기사의 댓글을 뒤지다가 '내가 뭘 하려 했더라?'라고 자문하며, 머리를 긁는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이러니 내일도 틀림없을 것이다.
지금의 내겐 어떤 힘이 필요할까. 부디 잔소리로 가능하면 좋겠는데, 이미 살아온 세월이 40년이 넘었고, 보수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남자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나의 m은 모르긴 몰라도 잔소리로는 어림없으리라. 살만 빼려 하지 말고, 내 관성도 다이어트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