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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았다곰 Jan 03. 2022

초등학교, 어디까지 알고 있니? -1-

작지만 큼지막한 변화들 그리고 소소한 변명들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져 속도가 아니라 가속도의 증감을 따져야 할 정도랄까. 가끔 TED에 들어가 IT, 교육과 관련한 이슈를 찾아보는데, 이미 기술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발전했고, 과학은 그 너머를 보고 있더라.


교육은 그 변화에 제일 둔감한 분야 중 하나다. 그 와중에 학교의 변화는 더 느리다. 혹자는 학교가 가장 진보적이고 변화에 민감해야 하지 않냐는데, 학교가 교육 외에도 사회화 과정이라는 부차적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런 사견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변화는 많이 느리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10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 세월의 풍파에 강과 산이 침식, 퇴적을 일으키는 시간이라면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알고 있다고?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길.



1. 체벌이 불가능하다.

뉴스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변환데,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적어본다. 완전 불가능하다. 때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벌을 주거나 기합을 줄 수도 없다. 그리고 감정적 학대도 불가능하다. 여기서 감정적 학대는 욕을 뜻하지 않는다. 학생을 무시하거나 탓하는 수준의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기 반 학생에게 '넌 우리 반이 아니야.'라며 이동 수업 때 학생을 남겨두고 가거나, 친구들 앞에서 '넌 거짓말쟁이야. 거짓말쟁이, 나쁜 어린이...'라고 한 교사가 아동복지법 위반 즉,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된 사건이 있었다. 작년의 일이다. 체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 촌지는 없다.

제일 자신 없는 항목인데, 우선 나와 주변의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촌지는 없다. 짧은 교직 경력이긴 하지만, 받은 적도 없고, 받았다는 사람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하긴 받았다고 누가 떠들겠냐마는 그래도 없다. 문제는 확정적이지 않다는 건데, 최근에 30대 후반의 선생님과 대화를 하던 중,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에는 있었다는 얘길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물러나면, 내가 교직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촌지 얘기에 선생님들이 쉬쉬하기는커녕 우스갯소리 정도 반응을 보였으니까 최근에 촌지는 없다고 봐도 좋다.


촌지 말고 선물은 어떨까? 역시 없다. 권익위원회에 따르면,  '학생대표'가 공개적으로 드리는 카네이션 외 다른 선물은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 일일이 위법성을 따지기 어렵다고 한다. 손편지도 재질이나 장식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권익위 차원에서 판단을 내리는 게 적절치 못하다고 하니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힐까? 실제로 청탁 금지법의 1호 신고 사례가 대학생이 교수에게 건넨 캔커피란다. 이 정도면 모범생으로 살아왔고 모범생을 키우는 교사들의 천성을 봤을 때, 알아서 조심한다.



3. 학교폭력을 쉬쉬하지 않는다.

심각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해서 논란거리가 되면, 피해자 가족의 인터뷰 그리고 뉴스의 댓글에는 학교가 학교폭력 사건을 쉬쉬하며 덮기 급급하다고 한다. 모두들 자신과 주변의 경험, 그리고 교육계에 대한 오랜 불신을 근거 삼아 그렇게 얘기한다.


옛날에는 그럴 수 있었다.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책임을 물었고,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관계자들이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며 아이들의 성장통 정도로 치부하며 마무리 지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선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한다고 해서 반드시 학교에 책임을 묻는 게 아니며, 더 큰 이유는 덮거나 덮으려는 시도가 있는 경우 더 큰 처벌과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매년 학교폭력 예방 연수를 전 교직원이 이수해야 하고, 학교폭력 사안을 담당하는 교사가 따로 배정되며,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하는 위원회가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로 구성된다. 최종 결정은 교육청까지 넘어가는데 교육청의 위원회에는 학교폭력 전문 변호사가 회의에 참석한다.


하지만 담당 업무를 맡은 나로서는 왜 학교를 의심하는지 이해할 수 있고 공감되는 부분도 있다. 피해자 중심으로 사안을 처리하지 않으며, 처벌보다는 교화에 가까운 조치들이 내려지기 때문인데, 그렇다고 해서 사안이 터질 때마다 학교가 학교폭력을 무마하려 한다는 댓글이 공식처럼 올라는 덴 동의할 수 없다.


생각해 보시라. 사안 처리할 때 엄마, 아빠가 함께 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하고, 어떤 사안에서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온 적도 있으며, 때로는 기자들이 먼저 학교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데, 가능하겠는지. 놀랍게도 3가지 모두 직접 겪은 일이다.



4. 시험이 없다.

여기서 시험이란, 흔히 말하는 중간, 기말고사를 말한다. 연식이 좀 더 된 사람들에게는 월말고사, 시도별 평가도 있었을 텐데, 아무튼 이런 일제식 평가들은 사라졌다. 교사마다 단원이 끝날 때 또는 필요할 때 치르는 쪽지 시험 또는 형성, 수행평가만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적 기억의 시험, 그러니까 책상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책가방을 올려놓고, 시험이 끝나면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며, 시험 성적에 따라 상과 벌이 주어지는 평가는 사라졌다고 보면 된다.


그럼 어떻게 평가하냐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교사들마다 필요한 시기와 상황에 맞춰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평가를 한다. 일제식 평가를 시험의 전부로 알고 자란 세대가 학부모가 되었기 때문인지 여전히 옛날 방식의 평가를 선호하는 어른들이 많다. 이 역시 논쟁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추세는 일제식 평가를 지양하는 분위기다.


5. 개근상이 없다.

정확히는 개근상을 없애는 추세다.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개근상을 없앴다고 하기엔 무리지만, 전체적으로는 개근상을 주지 않는 게 맞지 않냐는 분위기가 대세다. 이유는 '교외체험학습'제도 때문인데, '교외체험학습'이란, 필요하면 학생이 학교 외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와도 출석으로 인정한다. 무려 1년에 30일 씩이나. 국외 체험학습이 포함되면 기간은 더 늘어난다. 물론 교외체험 학습 일주일~10일 전에 신청해서 학교장의 허락을 득하고, 다녀와서 보고서까지 제출해야 하나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많이들 사용한다. 좋은 제도이긴 하나 결석으로 처리하지 않도록 교외체험학습이라고 우기는 경우도 많다. 누가 봐도 집에서 놀았는데, 성의 없이 한두 줄 소감을 적고, 예전 여행의 사진을 첨부해서 내도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누구는 30일 꽉 채워 교외체험학습이란 명목으로 학교에 나오지 않고도 개근상을 받아가는데, 약지 못한 가정은 조퇴 한 번에 개근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 너무 많으니 개근상이 갖는 의미가 퇴색된다 하여 점차 아니 꽤 많이 없어졌다.



6. 준비물이 (거의) 필요 없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준비물 외에 각종 불량식품을 사 먹고, 세상 쓸데없으면서도 꽤 위험한 장난감을 사 모았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거의 매일 사다 날랐던 준비물 때문에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경험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준비물이 거의 필요 없다. 


준비물이 필요 없는 이유. 학교에서 이미 준비하기 때문이다. 지역과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한데 매 학기 학생 1인당 수 만원에 이르는 학습준비물 비용이 책정되고, 교사들은 매 학기마다 교과서를 펴고 필요한 준비물을 파악해 일괄적으로 구매한다. 물론 이것도 부족한 편이라 풀, 가위, 지우개 등 소모품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거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몇 년 담임을 맡으면 교실마다 남는 학용품들이 많아 준비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7. 교과 전담 교사가 있다.

교과전담교사란, 중고등학교처럼 특정 과목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교사를 말하는데, 초등학교에도 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초등 아니 국민학교를 다닐 때도 교과 전담교사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제도화되기 전이라, 선생님들끼리 협의해서 가르쳤으리라 짐작한다.


지금은 학교 규모에 따라 담임교사 외 교과전담교사의 정원이 정해지고, 학부모와 교사의 요청을 수합해서 어떤 과목을 전담교과로 할지 결정한다. 학교가 크면 당연히 교과전담교사의 수가 많고, 수가 많으니 과목도 다양해진다. 물론 학부모와 교사가 요구하는 과목이 거의 비슷한데, 보통 영어와 체육을 선호한다. 이 역시 지역 또는 학교의 상황에 따라 다른데, 음악이나 미술처럼 예술교과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과학이나 도덕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누가 전담교사를 맡을까? 이 또한 학교와 지역마다 상황이 달라 딱 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전담교사를 맡으려는 사람들이 부족해서 지역 이동 시 필요한 점수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전담교사의 수요가 많아 그러한 특례도 사라지는 추세다.




8. '선생 김봉두'는 없다.

젊었을 때 봤던 영화, '선생 김봉두'.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자꾸 '김봉투'라고 오타가 나서 몇 번 수정을 했는데, 의도 그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매일 술을 퍼마시고, 촌지를 받는 교사가 문제를 일으켜 벽지의 분교로 쫓겨나 시골 아이들과 지내는 중 개과천선을 했다는 뻔한 스토리의 영환데, 영화가 만들어지던 때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럴 수 없다니? 뭐가? 두 가지 측면에서 '선생 김봉두'는 없다.


우선, 쫓겨가는 사람이 그런 학교에 갈 수 없다. 내가 교사가 됐을 때 친동생이 했던 말이 있다. 형도 이제 산골 마을 같은 데 가냐고. 그때는 교사가 되기 전이었으니 그게 꿈이라고 말했는데, 말 그대로 꿈이었다. 현직에 나와보니 '김봉두'가 쫓겨간 학교는 언감생심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보통 그런 오지 또는 벽지학교는 가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유인책으로 '승진점수'를 부여하는데, 얼마나 더 시골스러운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진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10년 정도는 그런 곳에서 근무를 해야 해당 영역의 점수를 모두 채울 수 있어서 가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선다.


두 번째, 가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하기 때문에 '김봉두' 같은 사람은 갈 수 없다. 점수를 부여하는 학교는 둘째고, 해당 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승자만 입성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우선 경쟁 끝에 '김봉두'가 쫓겨간 학교가 위치한 지역으로 전근을 간 후, 그 지역 내에서 다시 경쟁을 해야 원하는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번 들어가기 어려우니 들어간 김에 점수를 모두 채우고 나오고 싶어 들어가면 함흥차사 나오지 않고, 가고 싶은 사람은 적체되기 마련이다.


선생님들끼리 경쟁을 어떻게 하냐고? 학생들처럼 점수로 서열이 정해지는데, 점수를 딸 수 있는 아니 정확히는 따야 하는 분야는 여러 가지다. 개인 연구로 입상하거나 내가 지도한 학생이 입상을 한 경우, 또는 내가 속한 학교가 학교 단위의 연구 프로젝트를 맡은 경우. 업무를 많이 맡는 보직교사로 일한 햇수에 따라 보상을 받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하는데, 보통 승진을 위해서 대학원은 필수라고 한다.


이런 이유로 요즘 '선생 김봉두'는 없다.



9. 봄방학이 없다.

학창 시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방학이 있었다. '봄방학'. 그냥 쭉 다니고 한 번 쉴 때 오래 쉬면 되지, 왜 중간에 학교를 나오게 하냔 말이다. 심지어 봄방학 전까지 학교에 나와도 할 일이 없어 청소를 하거나 자습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이렇게 불합리한 제도가 또 있나 싶었다. 나만 그랬나?


지금은 봄방학을 찾기 힘든데, 내가 어렸을 적 가졌던 합리적(?) 불만처럼 겨울방학과 종업식을 함께 치른다. 그러면 겨울방학과 동시에 학사 일정이 모두 끝이 난다. 물론 학교마다 상황이 다른데, 이는 학사일정을 학교장과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까지 함께 협의해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흔히 학교의 쉬는 날, 즉 재량 휴업일을 교장이 단독으로 결정하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그 결정 과정에는 교사와 학부모의 협의가 필수고, 그에 따라 학년 말에 교육주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다. 그럼에도 봄방학 없는 학사일정이 대부분인 걸 보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선배들과 어른들이 옳았다. 요즘은 봄방학이 있는 게 낫지 싶다. 우선 너무 춥다. 1월이 되면 감기 환자들로 결석도 많아지고, 선생도 아프다. 그리고 별의별 사건, 사고가 터지기 시작한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게 아니라 싸움 직한가 보다. 학폭도 많이 일어나 처리하기 바쁘다. 학교 공사 일정으로 최근에 봄방학을 했던 적이 있는데, 1월에 겨울방학으로 쉬고 2월에 다시 보니 새삼 반갑고 몸도 마음도 건강하더라.


어른들이 그렇게 했던 덴 다 이유가 있었다.



10. 당신이 알고 있는 학교 행사를 상상하지 마시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님께 묻는다.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학교 행사가 무엇이 있었나? 소풍? 운동회? 또는 학예회? 무엇이든 그때의 모습과 지금은 사뭇 다르니 그러려니 짐작하지 마시라.


우선 소풍. 그때는 걸었다. 마냥 걸어서 소풍을 갔고, 오가는 차를 피해 학교에 돌아왔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포병 출신인 내가 훈련소에서 많이 들었던 말을 되새김질해 보면, '3보 이상 승차'라고 했는데, 지금 초등학교 소풍이 그렇다. 정확한 명칭은 소풍이 아니라 '현장체험학습'인데, 아무튼 3보 이상이라면 버스를 탄다. 근처를 가도 걸어가는 일은 없다. 


운동회.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마스게임, 부채춤을 추고, 흙먼지 먹어가면 준비했던 기계체조를 선 보이다가 부모님께서 준비한 도시락을 먹던 기억이라면 접어두시라. 꽤 오래전부터 운동회를 체육대회로 바꾸고 있다. 초등학교는 학년 또는 학년군별 체육대회를 치르거나 규모가 작은 학교는 '레크리에이션'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전에 대회를 진행하고 오후에는 정규수업을 받아야 한다. 당연히 점심은 급식 먹는다.


학예회는 예전 모습으로 치르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한데, 예전과 확실하게 달라진 점이라면, 특정 개인의 기재를 뽐내는 행사가 아니라 학급 또는 학년별로 무대에 오르므로 누구나 한 번은 무대 조명을 받을 수 있다. 전시회 역시 마찬가진데, 붓글씨를 폼나게 쓰거나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는 수준의 기량이 아닌 말 그대로 우리 반에서 만들어낸 전체의 작품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아 이 역시 모두에게 기회가 열려 있는 편이다.


또 뭐가 있을까. 아! 장학사 방문 또는 시범(공개) 수업도 있구나.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하거나 내일 공개수업이 있어서 학부모님께서 학교에 방문한다고 치면 며칠 전부터 양초, 왁스 칠하고 창문 닦느라 바빴던 경험, 한 번씩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선생은 모르겠지만 최소 학생들에게는 누구에게 잘 보이느라 청소를 시키지 않는다. 청소는 흉내일 뿐, 실제 청소는 선생들이 주로 담당한다. 이것도 예전과 달라진 점인데, 아무튼! 그렇게 청소를 시켰다가는 신문에 날 일이다. 장학사들보다 한참 높은, 한 지역의 교육계 수장인 교육감이 와도 그런 전시성 '의전'은 하지 않는다. 실제 '의전'을 준비하지 말라고 했는데, 준비했던 학교의 방문을 취소했던 적도 있다.



10가지를 채우려고 썼는데, 쓰다 보니 10가지가 넘어 2탄을 써야겠다 싶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바뀌었구나. 내가 쓴 내용이 결코 사소한 변화가 아닌데, 아직 할 말이 남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변화의 원동력은 단 하나, 학생이다. 학생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기준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멀었다.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불합리하고 모순 투성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학교는 보수적이다.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그래서 더디지만 시나브로 바뀌고 있다. 그 흐름이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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