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선생님의 생각이 서로 사맛디 아니한 이유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고 했다. 난 그 떡을 늦게 받아먹은 편이다. 일찍이 아버지께서 고등학생인 내게 초등 선생은 어떠냐며 넌지시 마음을 떠 보신 적이 있는데, 내 표정의 변화를 보시고는 서둘러 뱉은 말을 회수하시곤 했다. 1년마다 한 번씩 3년에 걸쳐 제안을 하실 정도로 못내 아쉬우셨을 텐데, 당신께서도 '남자가 무슨 초등 선생이냐'라는 당시의 시대상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강권하지는 못했으리라. 그때만 해도 IMF 전이라 경제 상황이 나쁘지 않았고, 공대를 졸업하면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이 결정되던 시대라 남자들은 이과, 공대로의 진학이 당연시 여겨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10년을 앞서 내다본 아버지의 지혜였던 것을...
우여곡절 끝에 돌고 돌아 교대에 다시 입학했는데, 아버지께서 제안을 하던 시대와는 상전벽해로 공무원 특히 교사의 인기는 하늘 높이 치솟을 때였고, 임용시험의 경쟁률이 턱없이 높던 중등임용보다는 입학만 하면 임용은 쉬이 통과할 수 있다는 교대의 인기가 절정일 무렵이었다. 덕분에 나 같은 N수생 또는 초장수생들이 대거 교대로 몰려들었고, 공부 좀 꽤나 하지만 원하는 학과나 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거나 여러 형편 등으로 교대에 진학해야 하는 수험생들도 많았다.
장수생이든, 현역(졸업 후 바로 진학)이든, 교대의 입학생들은 시험에 매우 특화된 교육을 받은 친구들이었고, 대부분 큰 일탈과 문제없이 바르게 자랐구나 싶은 느낌을 받게 했다. 수업을 빠지기는커녕 늦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과제 한 번에 제본을 해야 하는 분량의 결과물을 제출했다. 조모임과 토의 시간을 그리 귀찮아라 하면서도 막상 시작했다 하면 순딩이들은 어디 가고 날카로운 패널로 변신했다. 요즘 세상에 담배, 술 따위가 무슨 일탈이냐 싶겠지만, 그마저도 즐기는 사람들이 적었을 정도니 어느 정도의 모범생일까 짐작이 되리라.
그리고 그들은 나처럼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러니 소위 문제 학생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선생이 된 후에 학생들을 책망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다.'니까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툭 까놓고 말해서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러냔 말이다. 방금 설명한 내용을 숙제로 냈는데, 숙제를 하지 않으면 혼이 날 거고, 혼나는 걸로 끝나지 않고 해올 때까지 검사를 할 텐데. 때로는 추가 숙제를 받을 수도 있다면 당장 하는 게 낫지 않겠나? 그게 이득이고 상식이잖아라고 떠들어댄다. 그런데 왜 안 하냐고!
이해가 되겠는가. 그 숙제를 집에 가져가기는 커녕 수업 시간에 모두 해결했을 테고, 학원과 과외 선생이 내주는 숙제까지 꾸역꾸역 해내고야 마는 학생들이 선생이 되었는데, 매 시간, 매일 똑같은 실수와 후회를 하며 혼이 나는 제자들이 이해가 되겠냔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탓한다. 너희들이 잘못이다. 습관, 성향 또는 이해 못 할 무엇이든 상관없이 우선 너희들의 잘못이 확실하다. 방금 연필 갖고 장난치다 혼났으면서 10초도 되지 않아 같은 장난을 치는 너희들이 잘못이지 잘못을 지적하는 나는, 선생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는 중일뿐이다.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자라온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 왜?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게 자라지 않았으니까.
이해는 공감을 근간으로 하고, 공감은 전이가 바탕이 되며, 전이에는 교집합이 필요하다.
학창 시절, '깃발'이라는 시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시구를 해석하며 '공감각적 심상'이라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깃발'이라는 시각적 심상을 '소리'로 청각화(聽覺化)해서 표현했기 때문인데, 여기서 '화(化)'는 '전이'를 뜻한다. 물체에 반사된 빛을 시신경으로 입력받고 해석하는 '시각' 신호와 매질의 진동으로 발생한 '청각'신호는 엄연히 다른 정보지만, '전이'라는 데이터 변조를 통해 같거나 때로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이'는 두 가지 이상의 감각을 넘어 나 외에 타인의 감정을 나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거나 이해하는 과정으로 발전한다. 글과 영상에 등장하는 여러 사연들을 보고 들으며 함께 웃거나 눈물 흘리는 경우가 있을 텐데, 나와 물리적으로 접촉점이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만으로도 내 감정과 동일시하는 '전이'가 일어날 때 우리는 이를 공감이라 한다.
문제는 '전이'가 일어나려면 교집합이 필수라는 점이다. 어머니께서 고생하시며 자식을 키운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다고 치자. 타인의 이야기며 문자로 접했을 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실 것이다. 이번엔 프로그래머가 코딩하는 중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떠올려보자. 공감하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감동스토리보다는 적을 게 분명하다.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여러 이미지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으나, 프로그래머라는 특정 직업의 이야기는 쉽사리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이가 쉽게 일어나려면 그래서 공감이 되고, 결국 이해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의 교집합이 필요하다.
나는 어렸을 때 유명한 장난꾸러기였다. 수천 명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2학년 학생이 6학년 교실을 뛰어다니는 데, 한 선생님께서 나를 붙잡으시더니 이름을 확인하시고는 "네가 그 유명한 이OO이구나?"라고 하시더라. 선생이 되어 상기해보니 1학년 담임선생님의 고충이 어땠을까 짐작이 되고 남는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소위 문제 학생들이 많았다. 막상 지내고 나면 그렇게 착한(?) 사람들이 없는데, 제도권 교육에는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고등학교까지 한글을 깨치지 못했던 'ㄱ',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학교에서 잠을 보충하던 'ㄴ', 친구들과 쌈치기, 카드놀이하는 재미로 학교를 다녔던 'ㄷ', 그리고 툭하면 쌈질에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ㄹ'까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잘 지낸다. 모두들. 직장이든, 사업을 하든 각자의 밥그릇도 알아서 챙기고, 결혼해서 토끼 같은 애새끼와 여우 같은 마누라 데리고 잘 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 못한다고, 말썽 피운다고, 성실하지 못한데 못되기까지 하다며 온갖 구박을 당했는데 지금은 잘 살고 있다.
그 친구들을 떠올리면 학교에서 숙제해라, 공부해야지, 정리 안 하냐는 나의 잔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허탈하기도 하다. 그래서 가끔 욱하고 올라올 때, 그들을 진정제 역할로 떠올린다. 그리고 좋게 타이르자 다잡는다.
선생님들은 모범생이다.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렇지 못한 학생들을 만나면 당황하기 일쑤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쌈과 학생의 말, 생각이 달아 서르 사맛디 아니할 수밖에 없다. 원래 인간이란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날 때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존재니까. 그래서 편견도 생기고 차별도 발생하지 않나. 그러니까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기도 하며, 때론 밉기까지 하다.
그러니까 더욱 학생들과 교집합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마음과 생각이 전이되고, 공감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이해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없는 교집합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별 수 없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직접 경험이 안되면 간접 경험으로 채워야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유행어를 쓰고, 게임 캐릭터의 안녕을 물으며 접점을 늘리다 보면 완벽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선생님이 자신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이구나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모두 모범생일까? 타 직업군 대비 그런 성향의 사람이 많을 뿐, 그럴 리가 있나. 온갖 군상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인데 어찌 다 같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많았다. 어디까지를 일탈로 볼 거냐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변명치곤 참 길다. 그래도 학교에서 선생님과 충돌이 잦은 학생이 이 글을 읽는다면 오히려 학생들이 선생님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라도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