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노래 따라간다.
난 가요를 듣지 않는다. 개인적인 이유로 일부러 듣지 않기도 했고, 음악을 들을 땐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들어야 해서 시간을 따로 내기 싫어 그렇기도 하다. 특히나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시절까지는 길거리에서 풍경처럼 들리는 노래 특히 인기순위 상위권 노래 외에는 전혀 무지했다. 이 노래도 몰라? 라며 장난치지 말라는 지인들이 한둘이 아닐 정도. 아무튼 난 가요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에 다른 주제를 찾아 헤매다 미리보기 사진을 보고 클릭한 '슈가맨3, 11회'의 'The Cross'편을 통해 'Don`t Cry'라는 곡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워낙 유명한 곡이었으니 나 역시 선율 정도는 귀에 익었는데, 가수가 누군지, 어떤 가사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혹시 썸네일 설명 중 등장하는 '복식호흡 보조 장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난 없다. 호흡 보조 장치야 들어본 적은 없어도 그런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복식'이라는 말이 붙으면 전혀 다른 성격의 단어가 된다. 음악과 무관한 사람들도 노래를 잘하려면 '복식 호흡'을 해야 한다는 정도는 풍월로 알고 있으리라. 그래, '복식호흡 보조 장치'는 노래를 위한 장치란 뜻 아닌가? 근데 미리보기 사진에는 '사지마비'란 단어가 떡하니 박혀 있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길래.
Dont` Cry는 The Cross라는 남성듀오의 대표곡 중 하나다. 곡 자체의 선율이 워낙 수려할뿐더러, 3옥타브를 넘나드는 고음으로 유명해서 지금도 노래방에서는 남성들의 애창곡으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고, 몇 년 전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연우'라는 가수가 이 노래를 다시 불렀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0, 30대 방청객들도 이 곡을 많이 알고 있더라.
진행자의 소개가 끝나고, 방청객뿐만 아니라 패널들 역시 가벼운 호들갑과 설렘을 장착하고 가수의 등장 아니 소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는 떨린다고 했고, 누군가는 설렌다고 했다. 마침내 코러스와 현악 연주자들도 무대에 올라섰다.
평상시 진행이라면 노래 시작과 함께 밝은 핀 조명과 실루엣을 통해 보이는 가수의 윤곽선을 보며 큰 환호성이 터졌을 텐데, 이번 편은 조금 달랐다. 노래가 시작되었지만, 환호성은 없었다. 오히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방청객과 패널들은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거나 놀란 토끼눈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가수 중 한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놀란 표정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큰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는 사람도 있었고, 귓속말로 어떤 상황인지 묻는 어린 친구들도 보였다. 패널들은 자신의 역할도 잊은 채 당황한 모습으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동년배의 어떤 남자들은 입술을 지그시 다물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지나간 가사 한 소절.
"울지 말아요."
아이러니하게도 관객들과 패널들은 모두 울고 있었다. 울지 않던 사람은 가수가 유일했다. 그래서 더 모순에 가득 찬 가사가 아닌가. 울지 말란 가사를 듣고 있는 모두 울고 있는데, 울지 말라니.
그러는 와중에 고음이 폭발했다. 예전만큼은 아닐 지라도 한 음, 한 음 짓눌러 뽑아 올리는 고음이 사람들의 공간으로 뻗어나갔다. 그제야 사람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사연인 즉, 보컬 담당인 '혁건'이 신곡 녹음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지내던 중, 발성 연습 중인 '혁건'의 배를 눌렀더니 강하고 높은 음이 나오는 걸 계기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단 희망을 가졌고, 우여곡절 끝에 '슈가맨'이란 프로그램의 출연 요청에 응했다고 한다.
내가 궁금했던 '복식호흡 보조 장치'의 궁금증이 풀렸다. 사지마비로 제대로 된 호흡으로 노래를 할 수 없던 아들의 배를 강하게 누르던 걸 지금은 기계가 대신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복식호흡 보조 장치'였던 것이다.
지금도 노래는커녕 긴 대화를 하기에도 호흡이 모자란 지경이라는데, 노래 그중에서도 충분한 양의 호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고음을 내기 위해, 보기에도 무지막지한 쇳덩이로 배를 눌러주고 있다니. 정말 인간의 의지란 어디까지인가 싶다가도 저렇게까지 노래를 해야 할까 싶을 정도다.
사실 난 저 영상을 보면서 울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속으로 관객들과 패널들에게 너희들도 울지 말라고 읊조렸다.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그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뿐이다. 봐라. 저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있는데, 동정할 일도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울지 마라. 지금 저 가수에게는 당신들의 눈물이나 격려가 아니라 예전만큼의 환호성과 놀라움의 탄성이 필요할 뿐이다. 브라보!
십 수년만의 무대에 선 두 명의 가수는 무대 밖의 우리들에게 말한다.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공수부대를 다녀올 만큼 건장하고, 락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소속사 사장의 제안을 거절했던 패기 넘치는 젊은이에게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시간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혹독했으리라. 혼자 힘으로 앉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심지어 대화를 하기에도 가쁜 호흡량으로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고음을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절망했을까. 그 수렁은 얼마나 깊고 끈적했을까.
그렇게 수년의 시간이 흘러, 비록 휠체어를 타고, 복부에는 차디찬 기계가 연신 움직이며 눌러대는 와중에도 두 명의 가수는 우리에게 다시 소리친다.
"So you don't cry for me. 세월 지나도 난 변하지 않아."
'가수는 노래 따라간다.'는 속설이 있다. 밝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인생이 펴고, 우울한 노래가 많은 가수의 삶은 어둡다는, 말 그대로 증명되지 않은 속설.
하지만 여전한 열정으로 Don`t Cry를 열창하는 그들을 보면 마냥 틀린 얘기 같지도 않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진행자에게 답했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노래를 따라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언제나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언제나 영원히
널 사랑해, 널 사랑해, 널 사랑해. So you don't cry for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