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았다곰 Nov 26. 2021

LoL에 담긴 아비투스

부득이 게임을 할 수 밖에 없단 변명 중 첫 번째

몇 해 전 학교를 옮겼다. 그때의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학교를 옮기니 아이들의 성향도 다르고, 학부모의 그것도 다르며, 동료 교사들의 면모도 달랐다. 나는 그대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난 이방인이다. 그 간극을 메우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이해심이 필요하다.


그 와중에 소소한 차이를 발견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물론 게임 말고 운동도 좋아하고, 음악도, 책도 그리고 기타 등등도 좋아하는 잡식성이다. 지인들에게는 동생들과의 지속적 소통 및 학생들과의 교류를 위해 필요하다고 변명하지만, 결론은 게임을 좋아한다.


당연히 아이들도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의 종류와 특성은 다를지라도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닌가! 수업 중에 "티어가 어떻게 되니?", 또는 "정글이야? 라이너야?"라고 물으면 대번 아이들의 눈빛이 1등성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게임은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 일명 '롤'이라 불리는 게임이다. 출시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PC방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장수게임이다. 우리 세대의 스타크래프트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학교를 옮기고 나서 으레 그랬던 것처럼 물었다. 어떤 게임을 좋아하냐고. 예상했던 답과 다른 답이 들린다. '오버워치' 일명 '고급시계'라고 불리는 게임이란다. 내가 다시 물었다. "나이 제한 때문에 할 수 없는 게임이잖아? 혹시 PC방 가서 해?" 핀잔이 한 술 섞인 걸 알았을까? 목소리가 잦아들며 답한다. "아뇨, 올해 부모님께서 허락해서 집에서 해요."라고.


오버워치라는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를 출시했던 회사에서 새로 만든 게임으로 롤에서 활약(?)하던 초등학생들이 많이 몰려갔다고 해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 게임은 유료인 데다 나이 제한이 있어 초등학생들은 PC방에 가야 접속이 가능했다. 초딩들 때문에 물이 흐려질까 우려한 어른 게이머들이 이런 초딩들을 발견할 때마다 경찰에 신고하는 땡깡을 부리기도 했다.


아무튼 전의 학교에서는 아직 롤이 대세다. 그런데 여긴 오버워치란다. 그게 무슨 차이냐고?


오버워치는 5만 원 가까이 되는 고가(?)의 게임이다. 반면 롤은 여러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무료 게임이다. 그래서 오버워치를 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구매하거나 PC방에 가야 하지만, 롤은 집에서도 혼자 할 수 있다. 오버워치를 집에서 한다는 건 부모가 구입해주고, 집에서 부모의 통제 하에 게임을 즐긴다는 뜻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다시 말하지만, 아이들의 유흥을 위해 기꺼이 수 만원의 돈을 지불할 수 있는 학부모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학교에 있다 보면 별의별 가정들을 다 만나게 되는데, 부자 나라에 살지만 아직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정말 생각보다 많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판국에 게임을 위해 돈을 써?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형편상 이해할 수 없는 가정이, 다시 말하지만 생각보다 많다.


결국 돈이다. 작고한 신해철의 말이 떠올랐다.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의 아이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는 자리가 있어 자신이 선택한 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설사 돈을 벌 수 없고,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위해 힘껏 달려보고 제 풀에 지치면 치기 어린 추억이었노라 말하며 다시 번듯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은가.


돈이 있으니 여유도 있고, 취미도 다르고, 꿈도 꿈답게 꾼다. '문화적 재생산론'의 대표 학자인 '브루디외'는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결정적 요소인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불평등이 유지되고 심화된다고 했다. 기출문제에서 죽으라 외웠던 '아비투스'를 한낱 게임 따위에서 발견하다니 '브루디외'가 알면 통탄할 일이다.


그래도 아직 학교는 그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 노력한다. 보다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위해 여러 종류의 연구학교를 공모하고 운영하며, 교육청의 산하기관들은 각종 프로그램과 연수들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한 편으론 그마저 소위 '학군'이라 불리는 지역마다 또 다른 차이가 보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누려야 할 문화의 다양성이 그 무엇에도 차별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상을 품은 밑바닥 희망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 학교를 벗어나면 다시는 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들이 어쩌면 그들에게 최고의 순간일 수도 있으니.

작가의 이전글 더하기 말고 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