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와 나를 변호하려다 실패한 글
일명 '투머치토커'라고 하든가. 내게 박찬호는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라는 수식어 외에는 특별할 게 없는 유명인이었는데, 요즘 세대에게 박찬호는 'Too Much Talker'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평상시 인터뷰나 sns의 글만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되기도 하고, 나름 귀여운 데다 당사자 역시 관련 컨셉으로 상업광고까지 찍은 전력이 있으니 내심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굳이 따지자면 난 박찬호 '과'에 속한다. 나 역시 박찬호(에 비길 바는 아니지만)에 못지않게 말이 많다. 글만 봐도 그렇다. 글도 길다. 말이 많으니 글도 길어지다 못해 늘어진다. 글짓기 대회에서 제한 분량을 넘기지 않도록 글을 줄이는 데 시간을 더 할애했고, 대학에서 시험 치를 때면 남들보다 한두 장 더 써내는 걸 재미로 여길 정도다. (말도 많고 글도 길다면 됐지, 글짓기 대회에 시험 얘기까지 몇 줄이냐) 아무튼 나 역시 말 많은 걸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족속이라 박찬호에게서 묘한 동지애까지 느낄 정도다.
그런데 우리 같은 부류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똑똑해 보인다고 칭찬도 많이 받고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자리에서는 우대도 받았는데, 요즘은 '투머치토커', 'TMI(Too Much Information)' 등으로 불리며 놀림감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하긴 요즘 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문물과 기기가 쏟아지고 초 단위로 정보가 갱신되는 세상에 이 정도 변화야 하등 이상할 게 없겠으나 내심 서운하다. 공부를 했든, 귀동냥으로 주워 들었든 그것도 아니라면 철저히 내 경험에 기초한 나만의 개똥철학이든 간에 모르는 것보다야 아는 게 낫고, 무식보다는 유식이 도움이 되지 않는가. 드라마를 보든 영화를 감상하든 하나라도 더 알고 보면 이해의 폭과 깊이가 늘어날 텐데, TV 보며 색감이 어쩌고 구도가 저쩌고 하다가 쫓겨나기 일쑤다.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된다지.
그래, 그러고 보면 알아서 부스럼인 경우도 많다. 오죽하면 조상들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을까. (조금 다른 경우긴 하지만)
국립국어원 자료집에 새로운 단어로 등재까지 된, 클래식 공연 중 빈번히 발생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 있다. 혹시 들어본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안다박수'. 클래식은 일반 가요처럼 귀에 익지 않은 곡들도 많고, 악장의 길이가 꽤 길어 언제 끝나는지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때 곡이 끝나는 시점을 아는 일부 관객이 곡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를 치는데 이를 일명 '안다박수'라고 한단다. 하지만 이는 콘서트홀 가득 메워진 음의 잔향과 벅찬 감동의 여운을 즐기는 사람들의 기회를 뺏는다는 점에서 잘난 체와 과시를 넘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아는 체가 된다. 그래서 악장 간 실수로 또는 넘치는 감동에 터져 나온 일명 '모른다박수'보다 '안다박수'가 더 밉상이라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류의 변화 속도는 눈부시다 못해 청맹 신세가 될 지경이다. 현대인이 주고 받는 E-mail의 정보량이 20세기 초 전 세계인의 평생 정보량과 맞먹을 정도에, 현재 전 세계에 축적된 데이터의 90%가 2015년 이후 생산분이라 하는데 감이 오지 않을 정도 아닌가. 클릭 한 번이면 태평양 건너 유수 대학의 수업을 청강할 수 있고, 웹에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기 위한 수 천만의 유튜버들이 대기 중이다.
이런 세상에 그까짓 손뼉 치는 타이밍과 드라마의 색감, 구도가 뭐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배우가 되기 위해 피나는 훈련과 연습을 거친 배우들의 혼이 담긴 연기와 배우 간 감정 교류 그리고 낮밤이 바뀌도록 써 내려간 작가들의 이야기야 말로 내가 집중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그리고 알면 얼마나 안다고.
결국 나무를 보느라 숲의 수풀 소리와 내음을 을 놓치는 우를 범한 셈.
말을 좀 줄여야겠다. 이 역시 삼시세끼 식후 30분 약 챙겨 먹듯 하는 다짐이긴 한데. 그게 뭐 대순가. 다시 한번 다짐하고 실패해도 또 다짐하는 자세와 습관이 중요한 거지.
오늘은 아내와 오붓이 끝까지 드라마를 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