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여왕 이론'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을까? 나도 수업 준비 중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다 알게 된 이론이다. 물론 나처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거나 영상으로 본 사람이라면, '붉은 여왕'은 그저 동화 속 등장인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붉은 여왕이 엘리스의 손을 잡고 빠르게 달리면서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해."라고 했던 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붉은 여왕 이론'은 이 대사에서 착안한 이론이다.
'붉은 여왕 이론'이라고 검색하면, 대체적으로 비슷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경쟁자 또는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더 빠른 변화를 꾀해야 한다 정도. 그래서 진화학에서는 '적자생존'을 설명하면서, 경영학은 경쟁과 혁신이 필요한 이유로 위 이론을 사용하는데, 한 어린이 신문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전략)··· [세상을 보는 눈] 반에서 항상 1등만 하던 친구가 계속 1등을 유지하는 일과 2등만 하던 친구가 1등을 하려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후략)
놀랍게도 어린이를 위한 신문의 기사다. 기사의 뒷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인 셈이다. 요약하자면 2등이 1등을 앞지르기 위해서는 1등보다 매일 1시간 이상 공부해야 한다 정도. 다시 말하지만, 놀랍게도 어린이 신문이다. 그래서 기사도 어린이에게 설명하는 어투로 쓰여있다.
사람들이 서로의 이득을 위해 모여 살게 되었고, 모여 살게 되니 경쟁은 불가피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물질과 지식이 절대적으로 풍요한 지금, 경쟁이 인간사회를 지탱해주는 필수 요소의 순위에서 여러 단계 하락한 지 오래 아닌가. 특히 우리나라처럼 '고급인력'의 양성을 국가의 사활에 결부 지어, 학생들이 처절하기까지 한 경쟁의 전장에 던져졌던 지금까지의 세태에 대해 각계각층의 반성이 줄을 잇는 시대에 (2015년 초의 기사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런 기사가 가능한가 싶다.
어린이들에게 '붉은 여왕 이론'을 알아듣기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라 치부한다 하더라도, 굳이 가뜩이나 민감한 학업성적에 비유를 해야 했을까. 더 나아가 "···차이가 벌어지지 않으려면 꾸준하게 노력해야 해. 잠시 한눈을 팔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사라져 저만치 앞으로 가거든." 이란 문구가 '세상을 보는 눈'(기사 내 단락 제목, 아마 구체적인 설명부인 듯)에 해당되긴 할까. 아니 맥락만 봐서는 '붉은 여왕 이론'을 설명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무제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노오력'을 설명하고 싶었던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경쟁의 필수불가결 속성에 대한 상반된 생각은 논외로 하더라도, 어린이를 위한 기사였다면(어린이들에게 이 이론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으나) 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니 그보다 여전히 경쟁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그들의 노력만을 변수로 이해하는 어른들의 고집스런 판단 착오가 한탄스럽고 안타깝다. 치를 떨며 '4당5락(四當五落)'을 겪은 세대가, 다음 세대 역시 악에 받쳐 '4당5락'을 경험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