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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았다곰 Nov 28. 2021

아는 만큼 보인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군대에서 병사들에게 가장 껄끄러운 존재가 누구일까? 대대장? 주임원사? 아니면 장교? 그것도 아니라면 직속 고참? 다 맞는 말인데, 내가 꼽는 최악의 가시는 병사 출신의 '부사관'이다.


군대 간부는 크게 장교와 부사관으로 나뉘는데 부사관은 장교보다 병에 더 가까운 간부라고 보면 된다. 보통 군대에서 '말뚝 박는다'라고 하면, 병사로 군 복무를 하던 사람이 부사관 즉 하사, 중사, 상사 그리고 원사로 이어지는 계급 체계에 도전한다는 뜻이다. 보통 일병이나 상병쯤 그런 생각을 품게 되는데 제대하고서도 할 일이 없다거나 몰랐는데 내가 군대 체질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소위 '말뚝'을 박는다. 평생직장이 되는 셈이다.


바로 이런 출신의 부사관이 까다롭다. 처음부터 부사관으로 지원한 게 아니라 일반병으로 입대해서 어느 정도 병사끼리의 문화를 경험한 사람이 그들을 관리하는 간부가 되었으니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보통 소위, 하사 등 초급 간부가 전입 오면 고참급 병사들이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 드라마나 개그 소재로 많이 쓰이지 않는가? 이때 병 출신 부사관은 예외다.


내 경험을 말해 보자면, 함께 근무했던 고참 A 일병이 일병 계급을 단지 얼마 안 되어 갑작스레 부사관에 지원해서 공교롭게도 다시 원 근무지로 전입을 왔었던 경우가 있다. 어땠냐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돌아왔는데 그 고참의 선임병들 몇 명이 남아 있었고, 그들 사이의 신경전에 새우등이 터질 뻔했다. 결과는? 당연히 A 일병의 승리였다. 덕분에 나머지 선임병들은 제대하기 전까지 생고생을 치렀고 그 불똥은 우리들에게 튀었다.


A 일병은 우리가 어디서 짱 박혀 쉬고 있는지, 우리끼리 쓰는 은어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끼리 누리는 여러 혜택과 부조리들을 눈에 훤히 꿰고 있었다. 보통 초급 간부들은 군대 내 주특기에서라도 병에게 밀리기 마련인데, 군대에 말뚝을 박아야 했을 정도로 군대 체질이었던 A 일병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짱 박혀 있던 병장들은 작업장에 끌려 나왔고, 우리끼리 쓰던 말은 바꾸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못했다. 나랑 꽤 말이 통했다고 생각했던 A 일병 아니 이제 A 하사는 철저하게 간부 입장에서 나를 상대하려 들었고, 나 역시 일말의 기대마저 접고야 말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내가 경험한 만큼, 배운 만큼, 다녀본 만큼만 보인다. 이걸 뛰어넘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 시대를 뛰어넘는 식견을 가졌거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기재를 소유한 사람 즉 천재 또는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 만이 자신의 울타리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


경험만 한 지식과 논리가 없다. 흔히 하는 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이 얼마나 내뱉기 쉬우며, 반박하기 어려운 말인가. 자기가 서울을 다녀왔다는데 그래서 안다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 맞다는데, 이길 재간이 없다.


나 역시 커피를 마실 줄 알게 되고서야 십수 번 반복해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에서 모카포트를 발견했다. 아기를 키우기 시작하니 애엄마들 어깨의 이물질이 눈에 띈다. 특정 단어가 들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교회를 다니는 가족이겠구나 싶다. 


학교도 비슷하다. 초등학교는 교대를 졸업하고 온갖 업무를 다 경험한 교사가 교감, 교장 즉 관리자가 되지만, 중등의 경우에는 관리자가 자신의 전공 외에는 문외한이라 다른 과목이나 업무 담당 교사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 감이 뭔지, 배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내놔라 할 거 아닌가.


비단 학교뿐인가? 직장 상사가 말 꼬투리 하나에, 세상 쓸데없어 보이는 글자색과 여백에 목숨을 건다고 치면, 그 이유는? 그런 디테일이 최고의 가치라 믿고 가르치는 상사에게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내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스스로 열심히 일에 매진하고 있으려니 믿는 상사라면? 그 상사 자신이 열심인 사람일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내가 성실하니 다른 사람도 그러겠거니 믿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요령을 피우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러리라 믿는다. 본디 내가 세상의 중심이지 않은가.


그래서 아는 동료 교사들끼리 그런 얘기를 했던 적이 있다. 신규 때 만난 교장선생님이 훌륭한 분이라면 승진을 꿈꾸어도 좋고, 괴팍한 분이라면 그 꿈 당장 접는 게 좋겠다고. 신규 때 만난 관리자가 훌륭하다면 그런 관리자를 모범으로 삼아 살아갈 테고, 반대의 경우라면 그런 관리자가 되기 십상일 테니.


지난 올림픽 때 체조 종목 은메달 수상자였던 여홍철의 딸, 여서정이 대를 이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 예능에서 우스갯소리로 아빠가 집에서도 코칭해 준 게 아니냐 물었던 장면이 있었는데, 다행히(?) 아빠는 집에서 체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가 선택한 길을 이미 걸었고 대성한 부모가 집에서까지 잔소리를 했더라면.. 


아는 만큼 보인다. 아니, 아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그 외 다른 사람과 상황, 또는 다른 무엇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전제를 잊지 말자. 그래, 내가 해 봐서는 아는 게 아니라, 아직 못 해 본 게 더 많지 않은가. 


공자의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를 유튜브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는 연예인을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 라던 '이하늬', 당신이 새삼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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