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았다곰 Dec 03. 2021

우리나라에서 유독 롤렉스가 잘 팔리는 이유

아버지의 소박한(?) 꿈

남자의 시계는 여자의 가방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꼭 필요하지만 그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고, 본질적 기능보다는 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써의 가치가 더욱 큰 장신구가 아닐까 싶다. 이미 여러 개 갖고 있지만 더 갖고 싶고, 고유한 기능보다는 외관과 브랜드가 보다 중요하며, 가성비를 따지는 이성보다는 욕망에 좌지우지되는 감성의 영역이다.


이제 70을 넘긴 우리 아버지도 그런 남자 중 하나셨는데, 당신의 형편에 비해 상당히 큰 욕망을 지니셨다. 우리 아버지의 꿈, 요즘 말로 '로망'은 그 이름도 위풍당당한 '롤렉스'다. 반지, 목걸이 등 몸에 걸치는 장신구를 귀찮아라 하실 뿐만 아니라 달라붙는 옷이 싫다며 한두 치수 크게 입으시는 분이 고급 시계에 욕심을 부리시는 것도 신기하지만, 십수만 원짜리도 아니고 0이 몇 개 인지 일일이 세워봐야 하는 가격대의 시계라니. 나 역시 아버지로부터 롤렉스에 대한 로망을 들어왔던 터라 시계 하면 롤렉스부터 떠올랐다.


그랬다. 그때까지는 롤렉스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계인 줄 알았다. 아래 사진을 보기 전까지는.

시계의 계급이라 하는데 문외한이라 잘 모른다. 어디까지나 재미로만!

어디부터 어디까지 진심이고 개그인지는 모르겠으나 최소한 아버지의 워너비는 당신이 알고 있는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시계는 아니었다.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아버지의 초라한 뒷모습 어쩌고 하는 글을 쓰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평생 소원이었던 롤렉스가 저 정도 위치라는 걸 알고 꽤 큰 충격을 받았고, 한 편으로는 아버지께 이 사실을 말씀드려야 말아야 하나 고민도 됐다. 


사실 아버지 한 분만 롤렉스 얘길 하셨다면 아버지만의 로망이려니 또는 생각이려니 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로망을 들어주던 친구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던 걸 보면, 미제와 일제를 따지며 널리 알려진 몇몇 브랜드 말고는 핫바리(?) 취급을 하시던 당시 세대에게 롤렉스는 시계의 대명사 또는 국가대표급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알고 보니 더 비싼 시계도 많더라. 시계에 문외한이고 1도 관심이 없는 나도 자동차 가격보다 비싸네, 아니다 집 한 채 값이네 하는 정도의 시계도 있다더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관심 있는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그런데 왜 유독 주변에서, 정확히는 한국에서, 롤렉스가 유명하고 특별한 '로망'이 된 걸까. 심지어 그 충성심은 갈수록 견고 해지는 듯하다.


수능 시험 준비를 하면서 '경제' 과목에서 공부했던 개념이 떠올랐다.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  원래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보면 가격과 수요는 반비례해야 하지만, 어떤 상품은 비싸면 비쌀수록 수요가 많아진다. 흔히 '명품'이라고 하는 재화들이 대표적인데, 고급화, 차별화를 내세워 가격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롤렉스가 유독 우리나라에서 잘 팔리는 이유를 베블렌 효과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반만 맞다. 전문가가 아니니 나머지 반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지만 딱 떨어지는 설명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고가의 브랜드라고 알려진 시계를 착용해서 나를 과시하려는 욕망은 베블렌 효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저 웃긴 계급표로 보면 나의 재력을 더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고가의 시계는 더 다양하다. 나를 최고로 과시하려면 더 비싼 시계를 내 손목에서 반짝이게 할 수 있지 않겠나.


문제는 여기 있다. 손목을 쳐들고 롤렉스보다 더 비싼 브랜드의 시계, 심지어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다는 브랜드의 시계를 과시하는데, 사람들이 모른다면? 롤렉스 정도는 한 수 접어준다는 브랜드, 구매자의 삶의 이력과 비전까지 살펴보고 나서야 판매를 한다는 시계를 양 손목에 걸치고 민소매 티를 입고 다녀도 사람들이 몰라보면 말짱 헛일 아닌가.


하지만 롤렉스는 다르다. 왜? 나도 알아보니까. 울 아버지 같은 백면서생 부류의 사람들조차 마음속 한 켠에 로망으로 자리 잡고, 아들과 지인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져서 마침내 사회가 비싼 시계의 대명사로 '롤렉스'를 떠올리고 있으니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핀잔을 먹기 십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롤렉스는 적당한(?) 가격대면서도 롤렉스를 착용해야 하는 최고의 이유인 '과시'하기에 마침맞은 브랜드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감히 '롤렉스 효과'라고 부르고 싶다.


찾아보면 그런 경우는 많다. 나는 이것을 경이롭게 많은 예로 증명할 수 있으나, 브런치의 여백이 충분하지 않아 옮기지 않는다라고 얼버무려 본다.


조금의 여백이 있으니 남겨보자면, 학교에서는 3~4월과 9~10월 사이에 '롤렉스 효과'를 자주 볼 수 있다. 바로 학부모 상담 기간이다. 요즘은 그런 경향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일부의 학부모들은 담임선생을 만나기 위해 최선(인지 최고인지 모르겠지만)의 차림새로 학교를 찾는다. 위에서 벌써 몇 번 언급했지만 명품에 아예 문외한인 나로서도 알아볼 수 있는 구찌, 샤넬 등의 가방은 교복인가 싶을 정도인데, 추측컨데 담임선생에게 내가 그리고 내 자녀가 이 정도라는 어필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역시 더 높은 수준의 과시용 가방도 있겠지만 알아볼 수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 하나 같이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들고 오는 거려니.


하지만 나처럼 샤넬을 '채널'로 읽으며 영어도 모르냐며 동생을 핀잔주던 사람도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어제와 다른 오늘 그리고 내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