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스스로가 괜찮은 선배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못난 교사의 반성문
전에 근무하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디베이트 수업에 관심이 많았다. 교육과정을 작성하는 2월에는 유명강사를 불러 전 직원에게 관련 연수를 듣도록 했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과정에 디베이트를 학년별로 다양하게 반영하도록 했다. 또, 매년 학년별 디베이트 대회를 열도록 했고 결승전에는 직접 참관을 오는 등 교육과정 운영의 핵심 과제로 디베이트를 강조하였다.
나는 초임 시절부터 토론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된 다양한 수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던 터라 디베이트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평소 토론 수업에 관심이 없거나 경험이 부족한 주변의 저 경력 선생님들은 당연히 디베이트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옆 반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나를 찾아왔다. 디베이트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서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그 선생님은 당시 경력이 3~4년 차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경력 때 선배 선생님들에게 수업과 관련된 고민을 진지하게 펼쳐 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수업 연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나의 과거를 반성하면서 찾아온 후배 선생님에게 최대한 상세히 토론 수업 전반에 관해 내 경험을 들려주고 직접 만들어 놓은 자료도 주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아 보였다.
“혹시 디베이트 수업을 직접 본 적은 있어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럼 내가 선생님을 위해서 우리 반 디베이트 수업을 공개할 테니까 다음 주에 우리 반 수업 참관 오실래요?”
“정말 그래도 돼요?”
“그럼요. 한 번 실제 수업 모습을 보면 감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옆 반의 다음 주 영어 전담 시간을 파악하고, 그중 한 시간을 골라 우리 반에서 토론 수업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우리 반 학생들과 토론 주제와 역할을 정하고, 토론 학습지를 나누어 주는 등 준비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 반은 디베이트 수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준비 과정과 수업은 이미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수업 공개가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일주일 후 수업 당일에 평상시처럼 디베이트 수업을 진행했다. 그 사이 옆 반 선생님은 토론 수업에 대한 책을 읽는 등 연구를 많이 해 왔고, 우리 반 수업을 진지하게 참관했다. 수업을 마치고 궁금한 것이 많이 해소되었다며 감사함을 표현하는 선생님을 보며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 느낌이 들었다. 배우고자 하는 그의 열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제 수업은 언제든 편하게 참관 오셔도 됩니다.
2023학년도에 우리 학교 수석선생님이 본인의 수업 일정표를 메신저로 보내주며 하신 말씀이다. 전담 시간 등 시간이 날 때 언제든 아무나 본인의 수업에 들어와 참관해도 된다는 의미였다. 수석선생님의 수업 일정표에는 다양한 교과와 학년을 어우르는 수업으로 가득했다. 순간 나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을 동료 교사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시간의 수업을 위해 몇 날 며칠 준비를 해도 실제 수업에는 너무도 다양한 변수가 있어 수업 공개는 쉽지 않다. 더욱이 경력이 쌓일수록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공개 수업은 부담이 크다. 후배 교사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 기술한 것처럼 디베이트나 하브루타 수업의 경우는 조금만 준비하면 언제든 공개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 수석선생님처럼 다양한 학년, 다양한 교과의 수업을 항시 공개할 자신은 아직 없다. 퇴임 때까지도 아마 그런 자신감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나도 언젠가는 수업전문가의 향기를 폴폴 내며 쪽지를 보내 보리라.
‘제 수업은 언제든 편하게 참관 오셔도 됩니다.’
이 글은 교만하게도 후배에게 디베이트 수업 한번 공개한 것으로 내심 스스로가 괜찮은 선배라고 착각하며 살았던 못난 교사의 반성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