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끝에서 멈춘 청춘

by 유기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나는 한번도 강압적으로 공부를 해본적이 없다. 음. '한번도'라고 하면 거짓말일지 모르겠다.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려는 엄마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든 고집이 있었다고만 하자.


초등학생 시절, 방과 후 금오산 등산을 하면서 야생동물 관찰을 즐겨했고, 미국에서 중고등학생때는 그 에너지를 운동하는데 썼다. 항상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해야했고, 가장 좋은 방법이 운동으로 체력을 방전시키는 것이었다.


이전글에서 축구부 활동에 대해서 썼지만, 9학년 때 축구부에서 뛰던 중 상대편 선수와 격렬한 몸싸움을 하다 쇄골뼈가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축구는 그만두고, 육상부에 들어가 단거리 선수로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부분 유학생들이 학교 운동부에서 운동을 했다고 하면, 그저 대학교 가기위해서 방과후활동으로 한거라 생각하겠지만, 난 진지하게 운동만 하면서 살았었다.

아침 7시 반에 학교에 도착하면 첫 두 교시는 운동으로 시작했다. 1교시는 요가, 2교시는 웨이트 트레이닝. 3교시부터는 정규 수업을 듣고 2시 반에 학교가 끝나면 저녁 6시까지 훈련을 했었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즌 중에는 토요일 마다 훈련이 있었고, 비시즌 중에는 같이 운동하던 친구들과 자발적으로 감독님을 귀찮게 하면서까지 운동을 했었다. 그렇게 3년을 꾸준히 운동만 하다보니, 어느 날 내 손에 메사추세츠 주 챔피언 트로피가 들려 있었다. 물론 개인 종목은 아니었지만, 100미터 계주 팀의 금빛은 충분히 뜨거웠다.


당시를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살았나 싶다. 나의 세계는 스파이크 밑창이 트랙을 긁는 소리로 시작되었고, 어떻게하면 0.01초를 줄일 수 있을지, 그 생각뿐이었다. 나의 모든 삶이 육상에 맞춰서 돌아가고 있었다. 공부는 늘 뒷자석이었다.

운동 끝나고 집에와서 씻고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보면 어느새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피곤한 몸으로 책상 앞에 앉아도 눈꺼풀부터 졌다. 시험 기간이 아니라면 스타크래프트 한두 판이 공부의 전부였다. 솔직히 말하면 시험기간에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는 법을 몰랐을 뿐 아니라 공부를 하고싶어하는 의지가 없었다.


결과는 뻔했다. 난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지원했던 5개의 학교 중 날 받아 준 곳은 단 한 곳이었다. 트랙 위에서는 '선수'였지만, 캠퍼스에서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늘 따뜻한 집에서 바라보던 울타리 바깥 세상은 생각보다 차가웠다. 강의는 호흡이 가빴고, 인간 관계는 자꾸 발이 엇걸렸다. 트랙에서 분명하던 선들은 캠퍼스에 들어선 순간부터 조금씩 흐려졌다. 트로피를 들어올릴 때 스포트라이트는 사라지고, 조용한 어둠만 남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내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환호 대신 정적, 결승선 대신 자유로움. 달리기의 끝에서 멈췄다고 믿었지만, 나중에 알았다. 그 자리가 내게는 성장이라는 낯선 출발선이었다는 걸.


Ready. Set.

총성이 울려 퍼진다.


난 다시 뛴다.

작가의 이전글비와 핸드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