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었던 날들

by 유기

아늑한 집을 떠나 처음으로 홀로서기를 시작했던 대학교 1학년.

엄마와 누나와 함께 차에 짐을 한가득 싣고 기숙사로 향하던 길, 그리고 함께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던 그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내 마음은 설렘과 불안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첫날부터 난 삐그덕거렸다.

첫 수업은 '기초 생물학'이었다. 수백 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 모두가 노트북과 필기구를 꺼낼 때, 난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한 채 그저 앉아서 수업을 듣기만 했다. 고등학교에서는 늘 선생님이 수업 자료를 나눠줬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았다.

수업 진행 속도는 내가 따라가기에 너무나 빨랐다. 과제 양은 고등학교 때처럼 전날 벼락치하는 요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시험기간은 말할 필요가 있을까. 고등학교 때는 과목별 시험이 며칠 사이로 띄어져 있었지만, 대학교의 시험기간은 학생을 고려해주지 않았다. 늪에 빠져 허우적댈수록 나는 더욱 깊이 빠져들어갈 뿐이었다.


혼자 모든 것을 오롯이 헤쳐나가야 하는 곳. 나의 행동에 내가 책임지는 것. 그것이 내가 맞이한 대학의 첫인상이었다.


나를 괴롭게 했던 건, 따라가지 못할 학업량뿐이 아니었다. 바로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기'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엄마가 아침 알람시계를 대신해 주셨다. 하지만 대학교에 오니, 난 내 핸드폰 알람 시계에 의존해서 일어나야 했다. 하지만 알람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난, 매번 아침 수업을 빠지거나 지각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학년들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영어 수업이 있는데, 보통 기숙사 건물에 작은 공부방에서 소규모로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웬걸, 수강신청을 바보같이 해버린 나는 내 기숙사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기숙사 건물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난 수업을 한번 신청하면 못 바꾸는 줄 알고 학기 내내 아침마다 수업을 들으러 20분씩 걸어 다녔다. 결국 대부분의 아침 수업은 출석조차 못 했다. 특히 과제를 끝까지 다 해놓고도, 제출만 못 한 날엔 나 자신이 더 한심해 보였다.


이런 일들이 쌓일수록 난 더움 힘들어지고 세상에 혼자 갇힌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려는 데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나의 삶에 나는 점차 무기력해졌다. 매일 밤, 어두운 기숙사 방 한편에서 난 우울함을 한잔씩 들이키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내일이 없듯이 보냈던 밤들도, 도서관 한편에서 새벽까지 이어진 속삭임, 덮인 이불 사이로 번져가던 온기마저도, 내 마음 한 편의 허전함은 채워주지 못했다.




제법 쌀쌀한 늦가을 토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나 학교 식당을 향해 걸어가며 오랜만에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밝게 인사하며 잘 지내냐고 묻는 엄마의 말에 나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나 너무 힘들어. 도저히 못 할 거 같아.

뭐가 그렇게 괴로웠을까. 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세상의 모든 서로움을 내 오랜 친구인 엄마에게 털어놓았다.

"oo가 힘들면, 엄마도 같이 슬퍼."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난 그저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미안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전화를 끊고 답답한 마음을 떨쳐내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학식인 쌀국수와 찐빵을 먹으며 달콤한 꿈을 꿔봤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하는 법을 배웠었으면. 매일 아침 엄마의 손길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혼자 일어나는 법을 연습했었으면. '어른'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달랐을까.

꿈은 치아 곳곳에 달라붙은 진득한 찐빵 앙금만큼이나 내 마음 곳곳에 여운을 남겼다.

내가 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시작된 봄학기, 하지만 난 가을학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고, 시험기간 벼락치기 공부를 하며 살았다. 역겹게도, 이제는 나의 잘못됨을 내 주변에서 찾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된 건, 어쩌면 내 잘못이 아닐 거야.

과제 제출 날 몸이 너무 아팠어.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오랜만에 친구들이 놀자고 했어.

시험 기간 때 내 옆에 친구가 힘들어해서 공감해 주다가 나도 같이 우울했어.

내가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시작된 여름방학, 남들은 봉사활동도 하고, 인턴도 하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집 컴퓨터 앞에 앉아 재수강 신청을 하고 있었다. 여름학기 "기초 생물학"을 듣는 학생 수를 확인하며 나름의 자위를 했다.

거봐, 나 말고도 재수강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잖아.


수강신청을 마치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보스턴 시내로 나갔다. 나의 오랜 친구인 J는 나와 같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유학생 친구인데, 중간에 다른 고등학교로 편입하며 대학교는 나보다 한 학년 늦게 시작하게 됐다. J는 나와 반대로 학업에 충실했고, 결국 이름에 걸맞은 명문대학교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와 같이 보스턴 구석구석 구경하고, 인적이 드문 골목에 있는 일식집에 들어갔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빨대 종이를 찢으며 만리장성을 쌓듯,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가 쌓아 올린 종이 성벽은 사실 세상과 나 사이에 만든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다. 그걸 뚫고 들어온 게 J의 말이었다.

"우리 열심히 살아야지,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정신 차려야지."


맞는 말이야. 나 정신 차려야 하는데.


"정신 차려야지." 그 말은 다짐이라기보다 내 하루를 붙드는 주문이었다. 그 주문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며칠 뒤 나는 학교로 가는 고속버스에 올랐다. 입학할 때와는 달리 짐은 가볍고 마음은 정돈돼 있었다. 창밖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나를 혼자가 아니게 했던 목소리들과 눈빛이, 내 곁에 여전히 있다는 걸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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