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하반기를 한 포기 죽순으로 살았다. 논문을 쓰기 위해 집 근처 카페 여기저기에서 서식하는 죽순이로 살았다. 그렇다. 나는 소위 말하는 카공족이었다.
아,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논란을 미리 불식시키기 위해 확실히 밝혀 둔다.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와이파이와 전기를 소모하는 민폐 카공족은 아니었다. 일개 카공족의 기생 따위는 코딱지 만큼의 타격도 줄 수 없는 글로벌 거대 자본 프랜차이즈 카페에만 서식하는 긍지있고 의식있는 죽순이었다.
거대 자본의 논리로 굴러가는 세계란 어떤 곳인가. 개인의 이름은 지워지고 기능만 남는다. 주문을 받고 음료를 생산하는 자와, 돈을 지불하고 그 음료를 소비하는 자. 물론 이 얄팍한 관계 마저도 머지 않아 키오스크와 로봇에 의해 멸종되겠지.
하지만 거의 모든 인간에게 디폴트로 심겨져 있는 오지랖이라는 씨앗은 거대 자본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운다. 이 씨앗은 무례함, 사생활 침해 등의 독풀로 자라나기도 하지만, ‘정’이라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가능성 또한 품고 있다.
스타벅스의 Arvil. 그녀는 스타벅스의 시니어 스탭이다. 맑은 피부와 말끔한 단발 머리, 작지만 단단한 체구의 그녀는, 논문을 쓰며 조용히 미쳐가던 내게, 따뜻한 물 한잔을 건네고, 끼니때를 상기시켜 주고, 안 팔린 음료 재료들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6개월 후 우리는, 서로의 고질병을, 밑반찬의 맛을, 피부 미용의 비책을 아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돈을 벌기 위해 타국으로 날아온 프렛(글로벌 샌드위치 프랜차이즈)의 네팔 청년들. 모두가 들떠 노는 휴일에도 한산한 가게를 지키며 일해야 했던 그들과 공부를 해야만 했던 나는, 서로에게 일종의 연민과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들은 내 라떼의 옵션-두유로, 얼음은 적게-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챙겨 주었고, 지갑을 깜빡한 나에게 외상을 주었으며, 나는 이 지점 직원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너희 관리자는 알고 감사하며, 포상을 내려야 한다는 칭송 이메일을 본사에 보내곤 하였다.
삶의 전모를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충분히 서로를 인식했고, 그 느슨한 인식만으로도 조금 더 기운을 낼 수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를 견디는 자들이 주고 받은 마음은, 기능으로 환원된 관계 속에서도 기어이 새어나와 버렸다.
스타벅스와 프렛의 커피는 맛이 없다. 하지만 맛은 미뢰로만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그 커피가 무슨 맛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그 하반기를 살아내는 동안, 나는 충분히 따뜻한 무엇인가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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