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자들의 쓸모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을 부수고, 편견을 깨며, 관습을 뒤집어 버리는 자유로운 영혼들은 인류 역사에 늘 존재해 왔다. 둔감해진 영혼들을 개안시키고 범인들을 영도하는 선각자적 존재. 몇 년 전 그 귀인을 요가 센터에서 만났다.
요가 센터에는 지정석 아닌듯 지정석인 지정석이 존재한다. 맨 앞 줄은 요가 좀 해 본 언니들의 전용석이다. 보통 복부에는 선명한 초콜렛 여섯 조각이, 등에는 성난 근육이 장착되어 있다. 인기가 아주 좋아 가장 먼저 매진 되는 자리는 거울 근처다. 요가복 속 자신의 모습을 꽤 마음에 들어하는 약간 나르시시스트적인 수련자를 위한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출입문 근처는 1분 1초도 허투루 사용치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자들이 선호하는 자리다. 마지막 인사 ‘나마스테’ 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샤워실로 튀어간다.
그리고 이 언니들 사이 애매한 구석 어디쯤, 몇 안되는 남성 수련자들이 섬처럼 모여있다. 모종의 비밀 결의라도 한 듯, 하의는 대부분 검정색 반바지고 상의는 무채색 티셔츠다.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어느 평화롭고 평범한 날이었다. 수련 시작 전 매트에 앉아 사지를 이리 꼬고 저리 뒤틀며 몸을 풀고 있는데, 출입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수련장에 들어섰다. 약간 곱슬거리는 금발에 꽤 장신이었으며 무엇보다 미모가 아주 빼어났다. 나의 시선이 무조건 반사적으로 그에게 가서 착 붙었다.
그런데… 뭔가 어색했다. 실루엣이 지나치게 매끈했다. 팽팽한 근육들과 신체 이 부위 저 부위 굴곡들이 필요 이상으로 눈에 들어 왔다. 신축성이 남달라보이는 검정색 레깅스가 그의 하체를 쫀쫀하게 감싸고 있었던 것이다. 상체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 채. 유럽 박물관에서 흔히 마주치는 나체 그리스 조각상이, 피그말리온의 애절한 사랑에 의해 생명을 얻어 걸어다니고 있는 듯했다.
요가 블럭을 가지러 가기 위해 그가 수련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매너를 아는 21세기 교양인들답게 그 누구도 노골적인 동요를 보이진 않았지만, 티 안나게 요동치는 동공들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듯 했다. 하지만 수련으로 단련된 요기(Yogie)인 그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정갈한 모습으로 매트에 자리를 잡았다.
근래 보기드문 용자였다. 남성을 위한 암묵적 지정석이 존재한다는 금기를 깨고 무려 첫 번째 줄 센터를 차지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내 시야 안이었다. 수련 내내 그의 존재가 일으킨 다양한 생각과 감정에 대해 고찰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수련이 끝나면 달려 나가 친구들에게 ‘레깅스남’ 이야기를 해 줄 생각에 신이나 호흡이 몇 번이고 흐트러졌다.
레깅스남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으’하는 소리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과 미간의 주름이었다. 궁금해졌다. 그는 대체 무엇을 잘못한 거지? 난 아까 왜그리도 신이났던 거지?
다른 지인들에게도 물어 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결국 또 ‘으’와 웃음과 미간 주름이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이 곧 뇌인 포노 사피엔스 답게 초록창에 검색을 해보았지만 다른 포노 사피엔스들도 대부분 이 세 가지의 다른 버전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냥 좀 거시기 하다는 거다. 세상은 ‘님아, 그 레깅스를 입지마오’를 외치고 있었다.
머릿속에 대책없는 공상가가 들어 앉아 있는 내 눈에는 사실 레깅스남이 ‘으…’가 아니라 ‘오~’정도로 보였다. 이질감이 주는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경계선들을 넘어서는 시도는 성패를 떠나, 모양의 미추를 떠나, 언제나 멋들어져 보인다.(물론 법과 도덕, 양심의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그 시도들이 낳고 낳고 또 낳을 변주와 그 변주들이 세상에 가져올 아름다운 변화를 상상하면, 내가 낳을 아이들도 아닌데 얼굴엔 벌써부터 흐뭇한 엄마 미소가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불편함을 불편함은 종종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신체 활동을 제한하는 디자인의 치마 대신 바지를 입으며 여성 의복 개혁을 주장한 19세기 최초의 여성 미 육군 외과의사 메리 에드워드 워커나, 남성 소변기와 자전거 바퀴 같은 기성품들을 미술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와 현대 미술의 새로운 문을 열어 젖힌 마르쉘 뒤샹의 시도들도, 처음부터 세상의 환대를 받지는 못했다.
레깅스남이 가져올 나비 효과를 논하기엔 시기상조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10년 뒤, 어쩌면 20년 뒤쯤 남성들이 레깅스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날이 올 지도. 남성들을 벨트로부터 해방시킨 공로로 위인전집의 한 권을 차지하게 될 지도. 그날이 오면, 난 오래 전 만난 귀인을 생각하며 혼자 뿌듯한 미소를 짓겠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