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생각들
시. 간! 내 시간! 을 외치며 거의 울다시피 하며 출퇴근했던 날들을 생각해보니 짜증내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잘 챙겨주지 못한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대부분의 월급쟁이들이 그렇듯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근무를 하자면 일터에 매어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인데도, 내게는 점점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구속처럼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뭐 불만이 없어서 꾹 참고 다니겠느냐만은 작년부터 그야말로 마음이 붕~ 떠있는 상태였다.
그러다가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시작하게 된 <마음공부>로 자기 사랑을 시작하면서부터 무조건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힘드니까 좀 쉬었다가 할래”라는 솔직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참고 버텨야 했던 여러 가지 사정이 얼추 마무리되고 위태로웠던 남편회사가 안정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사직서를 내버렸다. 아니, 내가 “먼저”사직서를 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우리 집 상황이 여러 가지로 지금보다 안 좋았던 암울했던 시절,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가계경제 상황을 얘기하다 보면 한숨만 나오고 점점 대화도 피하게 되었다. 남편이 회사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사람이라 직장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는 줄만 알고 살았다.
그러다가 근래 내 사고방식도 생활방식도 조금씩 변하면서 대화하는 시간이 점차 늘게 되었고, 어느 날 마음도 편한 주말 저녁 소주잔을 기울이며 결혼해서 언제가 제일 힘들었냐고 가벼운 마음으로 물은 적이 있다.
평소 유머러스한 남편의 성격으로 짐작할 때 당연히 힘든 적 없었다고 말할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안 힘든 때가 없었지…”
남편이 얼큰하게 취해서 긴장이 완전히 해제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나 보다.
16년 만에 처음 듣게 된 남편의 속엣말에 적잖은 충격과 함께 가슴이 아려왔다.
술이 깬 후에는 자기가 그런 쓸데없는 소리도 했었냐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때부턴 남편의 웃는 얼굴도 마냥 웃는 걸로는 안보인 건 당연한 일이었고.
외벌이 시절에는 남편이 지금의 안정적인 직장에서 퇴사를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고 내색은 안 했지만 그걸 느꼈다면 가계경제를 홀로 책임져야 했던 부담감은 상당했으리라.
뒤늦게라도 그 마음을 헤아리게 된 나는 “가장의 짐”을 나눠지고 싶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또 나만 생각하게 된 것 같다며 둘이서 크게 웃었는데, 우선 휴식을 취하면서 자리를 옮겨 잡은 후에 남편이 좀 더 편한 직장으로 옮기기로 의견을 모았다.
예전의 나를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을 한셈이다.
우리 집에서 제일 부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나였고 그랬던 내가 이런 유연한 사고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것이 마음공부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 집안의 분위기를 좌우하게 되는 아내이자 엄마인 내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집은 계속 암흑 속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지난 5년의 시간을 떠올려본다면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변화무쌍하고 스펙터클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된다. 수동적이고 변화하기를 꺼려했던 내가,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고 심리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경험한 시간이었기에 마음공부 이후의 내 생활은 참 많이 바뀌었다.
“저처럼 해보시면 아마 인생이 달라질 거예요”
무슨 홈쇼핑 광고 멘트 같기도 하고, 책 카피 같기도 한 듯 조금은 과장돼 보이지만 이보다 더 정직하면서도 믿음직스럽게 말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 유일한 열혈독자이자 무급(?) 모니터 요원인 남편은 항상 내 글의 문체가 너무 건조하고 재미없다며 쓴소리를 한다.
“난 담백한 게 좋아. 왜 꼭 모든 글이 위트 있고 유머러스해야 하는 거야?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자갸~사람들이 왜 몸에도 안 좋은 msg를 쳐서 먹는 줄 알아?”
“왜?”
“맛있으니까!!”
이 남자는 가끔 보면 삶을 통달한 사람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내 글에 대한 남편의 솔직한 반응에 처음엔 뾰족하게만 굴었지만 이제는 칭찬만을 바라지 않게 되었고, 다양한 반응에도 의연할 수 있다면 설령 냉혹한 평가를 받더라도 발끈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얼떨결에 시작한 마음공부로 진짜 어른이 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