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미나(pashmina)
나에게는 이맘때 항상 달고 다니는 생명줄과도 같은 존재가 있다.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쌀쌀하고, 변화무쌍한 날씨로 도대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헷갈리는 간절기에는 트렌치코트만큼 필요한 것이 바로 머플러이다.
유난히 추위도 잘 타고 헤어스타일이 숏커트라서 외출할 때는 특히 목이 썰렁한
느낌이 들면 맨손으로 나설 수 없다.
가방에 넣어서라도 잠자리 날개처럼 얇은 파시미나를 가지고 나가게 될 정도로
목과 발만 따뜻해도 상승한다는 체온 1도가 점점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얇고 가벼운 소재로 짜여있고 목에 둘렀을 때 넉넉한 길이로 풍성하게 두를 수 있는
것이라면 여러 상황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일반적인 머플러처럼 사용함은 물론 손쉽게 무릎담요로 변신이 가능하고
또 넓게 펼쳐서 어깨에 걸치면 우아한 숄로도 손색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일석 N조”의 아이템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겨울에도 얇은 파시미나에 더 손이 가는 이유는 따뜻하면서도 가벼워서 움직임이 편하고
몸이 둔해지지 않아 스타일을 망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보온성이 뛰어난 파시미나를 쓰면서부터 두꺼운 니트 목도리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얇고 따뜻한 것이 최고니까~
그러나 뭐든지 하나가 마음에 들면 그것만 주야장천 걸치고 다니는 내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같은 파시미나를 매일 착용하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100% 파시미나의 경우 가끔은 쉬게 해 줘야(안 써야~) 좋은 품질을 유지하며
오래 쓸 수 있다는 사용설명서가 눈길을 끈다.
고급스러운 최상의 파시미나가 물론 매력적이지만 마음 편히 쓰려면 비교적 관리가
까다롭지 않고 내구성 좋은 혼방 제품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나에게도 순수 파시미나가 하나 있으나 휘뚜루마뚜루 더 만만하게 두르고 다니게 되는 것은
적당량의 캐시미어가 함유된 혼방제품이다.
여러 가지 소재 중 깃털처럼 가볍고 얇아 보여도 목에 두르면 놀랍도록 따뜻한 '파시미나'는
원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산양의 복부 털로 짠 고급 수제 직물을 말하며, 일반적으로
최상급의 캐시미어를 지칭한다.
부드럽고 실크와 같은 윤기가 있어서 숄이나 고급 스카프의 재료로 쓰이는데 파시미나가 함유된
스카프나 숄을 그냥 파시미나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보다 더 까다로운 물건은
역시 감당할 자신이 없다
보온성만큼 중요한 머플러의 색깔은 눈으로 볼 때와 직접 둘렀을 때 큰 차이가 느껴진다.
얼굴과 가장 가까이 닿게 되는 아이템이다 보니 무엇보다도 내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퍼스널 컬러>를 참고해야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기껏 신경 써서 두르고 나간 요 녀석이 안색을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이
돼버리고, 어울리는 색으로 잘 차려입은 옷이 아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
코디에서 화룡점정과도 같이 중요한 아이템이니 만큼 직접 착용해 보고
내 얼굴을 화사하게 만드는 색깔로 고르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의 길일 것이다.
립스틱 없이도 내 혈색을 우주 끝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색깔로 잘 골랐지만
이제 스타일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가 문제다.
옷만큼이나 파시미나도 약간의 '손맛'이 필요한 건지, 막 두른 것처럼 보여도
패션고수들은 어김없이 한 끗 차이를 보여준다.
신경 안 쓴 것처럼 둘렀지만 자연스럽고 멋스러워 보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반면 너무 정성 들여 묶어준 걸 들키는 순간 난 센스 없는 패션 초보자가 돼버린 것 같다.
'꾸안꾸 스타일'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머플러를 할 때 자연스럽게
연출하는 것은 한없이 어렵게 느껴진다.
귀한 퓨어 파시미나라서 올이 나갈까 봐 너무 조심스러워한다면 바람에 나풀대는
그 끝자락을 하루 종일 어색하게 붙잡고 다녀야 할지도 모른다.
한낱 물건에 연연하지 않고 무심한 듯 걸치고 다니는 모습 또한 멋들어진 머플러패션의
한 부분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파시미나를 두른 모습이 '센스 있는 손맛'까지는 아니더라도 애써 꾸민 듯 촌스러워
보이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우연히 파파라치컷을 보고 홀딱 반해버린 할리우드 스타의 파시미나처럼
멋지게 두르고 다니지는 못해도, 목을 따뜻하게 감싸는 것만으로 나는 그냥 만족해야겠다.
아무렇게나 대충 둘러도 폼나는 나의 몇 개 안 되는 멋 내기 아이템, 파시미나~
간절기마다 겪어내야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일기예보를 미처 체크하지 못해서
옷 입기에 실패한 날이라도 당황스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