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2
드디어 나의 색을 찾았으니 이제 반은 끝이 난 셈이다.
평소 염원하던 <캡슐 옷장> 만드는 일 말이다.
미니멀리스트 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서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이 나만의 캡슐 옷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캡슐 옷장이란 나에게는 옷 정리를 마무리 짓는 일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며 자주 입는 옷만으로 이루어진 옷장을 의미한다.
이 옷장에는 내가 안 입는 옷은 들어갈 수 없다.
순전히 <나>라는 모델에 피팅되고 엄선된 옷들로만 이루어진 이 보물상자가 있다면 그것으로 천하무적이 된다.
내가 자주 입는 80%의 옷은
내가 가진 20%의 옷들로 이루어진다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파레토의 법칙>은 옷 입기에 자주 적용해서 설명되는 이론이기도 한데, 어렵게 이탈리아 경제학자의 이론까지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내 경험만으로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예전에 갖고 있던 옷의 30% 정도만 남기고 전부 비워냈어도 옷 입는 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고,
오히려 외출 준비가 더 빨라졌으며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 스타일을 찾는 과정은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
진한 에스프레소를 뽑으면 그 자체로 본연의 향이 살아있는 하나의 훌륭한 커피가 됨은 물론이고,
어떤 재료를 더하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종류의 커피로 변신한다.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물을 섞으면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되고
얼음을 더하면 시원한 아. 아가 된다.
우유 거품을 풍성하게 내어 얹으면 부드러운 카푸치노가 되고,
초콜릿 파우더를 섞고 휘핑크림을 듬뿍 얹으면 달달~한 모카커피가 만들어지는 식이다.
내 옷장 안에는 모든 재료가 있으니 에스프레소에 섞기만 하면 된다.
기본 아이템에 악센트가 되는 몇 가지 컬러를 매치해서 기분에 따라 연출하면,
옷 가짓수가 많지 않아도 충분히 나를 돋보일 수 있고 매일 입고 싶은 옷만을 입을 수 있다.
그때부터는 외출할 때마다 뭘 입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내가 입는 옷들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을 뿐, 옷이 넘쳐나던 예전부터 그랬다.
패션을 모르고 옷을 못 입으면서도 옷이 많았다.
옷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옷장에 옷이 가득했다.
나에게 의미 없는 것들에게서 주의를 거두면 이렇게나 홀가분한 것을…
아까워서 미련 떨며 쥐고 있던 걸 놓아 버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