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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블루 Jun 30. 2022

정리에 관해 말하는 이유

프롤로그


“자기야~ 여기서 자기가 안 쓰는 건 바닥에 꺼내놓고 서랍 정리 좀 해줘요”

남편에게 소지품 서랍 정리를 부탁했다.

어떻게 하고 있는지 그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자니 기막히다 못해 웃음이 났다.

남편은 서랍에 있던 물건을 다 꺼내서 잘 접거나 차곡차곡 개어서 다시 그대로 집어넣는 것이다.

총량 불변의 법칙…..

그 안에는 지난 10년간 한 번도 안 꺼내본 물건이 대부분이었고 그것들이 추억의 물건도, 딱히 필요한 물건도 아니라는 점이다. 왜 남겨두느냐고 물으면 “쓸지 몰라서”라고 대답한다.

이런..... 확신하는데 10년 동안 안 쓴 물건이라면 앞으로도 쓸 일이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데도 남편에게 정리를 부탁한 의도는 직접 안 쓰는 물건을 비우고 꼭 필요한 것만 보기 좋게 수납하면서 무신경해진 쇼핑 습관을 재정비해주길 바래서였지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남편은 내가 말한 <정리>의 의미를 비움(empty)이 아닌 그냥 정돈(arrange)으로만 이해한 모양이었다.


출처  unsplash



과연 무엇 때문에 쓰지 않는 물건임이 분명한데도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하는지,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을 대비하느라 쓰지도 않을  물건에 귀한 공간을 내줘야 하는지 항상 드는 의문이다.

처음에는 나도 모든 걸 내 잣대로만 규정하다 보니 다른 사람의 물건도 오래되고 안 쓰는 것 같아 보이면 오지랖 넓게도 무조건 버리라고 조언했었다.

정리정돈 책에서 읽고 실천한 정리법으로 열심히 설득을 해도 그들은  마음의 동요랄지 그다지 정리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듯 보였다.

내 목만 아프게 연설을 늘어놓았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 필요한 거니까”  

“이렇게 늘어놔야 영감을 받거든”

“아까운걸 왜 버려?”

조심스레 조언을 해봤자 가벼운 웃음으로 때우거나

“당신이나 버리고 살아요”라고 사생활 간섭 말라며 화를 내는 이도 있었다.






결국 정리와 비움도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서가 아닌 본인의 마음이 움직여야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내가 정리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는 불필요하고 과하게 많은 물건들을 비우고 정리를 시작하면서 여백에서 오는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변화도 맛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물건을 사들이며 행복해하던 사람이었고, 많은 물건들을 테트리스 끼워 맞추듯이 정리하는걸 “정리의 달인”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삶의 충만함이란 집안을 물건으로 가득 채운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숨 쉬는 빈 공간이 나에게 주는 여유로움은 쇼핑의 즐거움보다 훨씬 값진 것이었다.


누구든 내게도 때가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물건 쌓아둘 데가 없을 정도의 포화상태를 느끼고 집평수를 넓혀야 하나 생각 중이라면,

-옷장은 미어터지는데 오늘도 입고 나갈 게 없다며 외출 준비가 길어진다면,

-사고 싶은 물건 원 없이 질러보아도 쇼핑에 대한 갈증이 더해간다면,

그리고

현재의 생활이 정체돼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다면 정리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타이밍이라는 것.


나와 같은 깨어남을 하루라도 빨리 경험해보길 바란다.

내 글을 읽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정리정돈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진심으로 물개 박수를 쳐줄 수 있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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