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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블루 Jul 04. 2022

전용 그릇이란 없다

주방 완결

그릇을 깨지지 않도록 포장할 뽁뽁이 한 두루마리, 마트에서 얻어온 여러 사이즈의 박스들...

저녁때가 다 되었지만 주방 바닥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모습이다.


“나 참~ 괜찮다고! 통화해 보니까 젠틀하던데 모~”

요즘은 물건을 직접 확인하고 사기 위해 직거래를 많이 한다고 했다.

남편은 그렇게 겁나면 같이 나가준다고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지~ 쓰지도 않을 물건 사모은 내 잘못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꼼꼼히 포장한 티포트를 꼬옥~ 안고 집 앞 마트로 향했다.

구매자의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해서 우리 집 근처로 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서 승용차에서 젊은 남자가 내렸고 티포트를 요리조리 살펴보고는 물건값을 지불하고 연신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슝~~ 가버렸다.


출처  unsplash

      

마음에 안 든다고 할까 봐, 나쁜 사람일까 봐 걱정이 한가득이었는데 막상 거래가 끝나고 나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엄청 큰일을 해낸 것 같아 날아갈 듯 기뻤다.

“자갸~ 나 2만 원 벌었다. 히히”

당시 구입가의 반도 안 되는 돈을 받고서 이렇게 기뻐하는 것이 참 우스웠지만 앞으로는 정말 작은 컵 하나라도 허투루 사면 안 되겠구나~ 반성을 하게 됐다.






첫 거래가 성공적으로 끝나자 난 더욱 속도를 내서 물건 정리를 했다.

너무 작은 사이즈여서 쓸모가 적었던 무쇠솥,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빵을 위한 제빵도구와 오븐 용기,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정리를 한 탓에 덜어낸 냉장고용 밀폐용기들...

충분히 상품가치가 있는 훌륭한 물건들은 구매자를 찾아 판매했고, 제빵이 취미인 동네 친구에게 나눔을 했으며, 기부한 물품도 있었다.

물론 좀 더 부지런을 못 떨었기에 아직도 가지고 있는 그릇들이 남아있지만, 예전처럼 크기별로 종류별로 '모으듯이' 그릇에 연연하지 않았고 한 가지 냄비로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드는 일이 늘었다.

다용도 웍이란 다용도로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볶음도 하고 찜도 하고 전골도 해 먹는다.


더 이상 우리 집 주방에 <전용 냄비>라는 것은 없다.


그래도  주방 벽장 안에는 정예요원들이 대기 중이니 어떤 요리 상황이 닥쳐도 즉각 대응이 가능하다.

감자칼도 디자인별로 있는 게 아니라 이제 딱 한 개라서 감자가 등장하면 떠오르는 녀석은 이거 하나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사실이었는데도 왜 바꾸지 못했을까?


내 주방엔 한두 번 썼다고 벗겨지는 허접한 냄비가 아닌 내구성이 좋은 제대로 된 냄비가 있으니 아끼지 않고 마구 써주기로 했다.

요리를 위해 만들어진 물건은 요리할 때 쓰는 것이지 내가 모셔야 할 상전이 아니니까 말이다.


명품 도구를 잘 쓰는 길은, 아끼고 모셔놓기만 할 것이 아니라 많이 써주면 된다. 그것이 좋은 물건을 현명하게 잘 사용하는 방법이다.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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