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도슨트 일상 기록 EP00
도슨트로 일하는 중입니다
작년 9월에 취업하여 현재까지 공공기관에서 전시 운영과 해설 일을 하고있다. 일반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아니고 약간 예술계통이되 특수분야라고나 할까. 지방에 있고 심지어 개관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관람객이 주요 전시장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그 무엇보다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찾지 못하고 오랜 기간 방황하다가 처음 들어간 회사이기에 나에게 의미가 크다. 현재까지 일한 약 여섯 달 동안,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의 달콤함과 업무 상 어려운 점, 무엇보다 회사 내의 인간관계에 대한 약간의 회의까지 무수한 생각과 감정이 생겨 차근차근 관련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도슨트를 지원하게 된 계기
구직 과정 임금이나 근무지도 중요하지만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하던 내가 해당 업무에 망설임 없이 지원을 하게 된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1. 평소 좋아하던 분야
여러 방면에 관심이 많은 나지만 특히 철학, 역사,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다. 나처럼 비전공자지만 예술 관련 일을 꿈꾸는 사람에게 해당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하물며 전공자도 구직에 난항을 겪는 요즘 아닌가...ㅜㅜ 그런데 바라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예상치도 못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사실 경기도, 심지어 외곽 쪽에 있는 곳이라 경쟁률이 높지 않았던 것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래 내가 좋아하던 역사나 미술 관련 쪽과는 사알짝 거리가 있지만 어쨌든 비슷한 예술 계통이고, 새로운 분야를 알게되어 오히려 지금은 재미있게 공부중이다.
2. 토킹 이즈 마이 라이프
실상 말하기 보다는 여러 의견이나 생각을 말하고 공유하는 과정 자체를 좋아한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도 금새 삶의 궤적을 나눌 만큼 사람과의 만남을 무척 좋아한다. 해설이라는 업무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말하는 걸 좋아해야 할테니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 지원하게 됐다.
3. 박물관 도슨트로 근무하던 친구의 추천
친구 역시 국립박물관에서 오랜 기간 해설사로 일했는데 예전부터 나한테 도슨트 업무를 해보라고 권유한 적이있다. 성격도 외향적이고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 필자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예전부터 추천했는데 그땐 관심도 없다가 현재 이 일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다.
구직 과정
언제나처럼 여러 사이트에서 구인공고를 뒤져보던 중에 '전시 운영 및 전시 해설 요원'을 채용한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비록 10개월 계약직이지만 급여도 최저임금을 훨씬 상회하고 심지어 근무지가 내가 사는 지역(경기도)에 위치하며 집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특히 공고에 게시된 상세한 업무 설명은 지원을 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었다. 업무 내용이 구체적인 만큼 해당 업무를 담당할 인력 채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게 될 업무 내용을 꼼꼼히 따져가며 나의 경험을 최대한 어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로 자소서를 썼다. 관련 경력은 없지만 아르바이트 경험을 쥐어짜내고 서비스업 경력이 많은 점을 어떻게든 녹여내려고 했다. 자소서를 쓰고 바로 다음 날 4일 뒤 면접에 참석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혹시 면접에서 합격하게 되면 당일 저녁 합격 통보와 함께 바로 그 다음 날 부터 첫 출근이라고 했다. 국가 기관인데,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인력을 채용해도 되는 건가? 나 지금 사기 당하고 있나?
별별 생각과 함께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역시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신기한 형태였다.(파견직이지만 채용된 곳은 공공기관이기에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 없다.) 면접을 보고 당연히 난 안되겠지 했는데 이게 웬 걸. 당일 오후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 함께 일하게 될 매니저님이 전화를 주셨고 혹시 '부매니저'로 같이 일할 수 있냐고 제의하셔서 냉큼 수락했다.
다 됐고! 일단 뭐든 도전해!
'비전공자지만 일단 해보고 싶은 일은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던 게 이렇게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기 위해 매일 취업 사이트를 들락날락했고, 부리나케 마감 전날 막차 탑승에 성공했다. 비전공자인데 할 수 있을까...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나. 이 기회가 아니었다면 도슨트라는 직업과 일을 알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없었을 것 같다. 물론 전시 운영과 해설을 업무를 모두 도맡아 하고 있고, 현재까지 전시 '운영' 업무가 좀 더 비중이 높긴 하다. 하지만 개관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점점 단체 해설이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다. 그러나 내 업무의 본질은 '전시 해설' 즉, 관람객에게 이 공간을 구성한 이유와 관련 작품을 소개하는 중간다리 역할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결국 꾸며진 공간도 누군가 알아차리게끔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니 말이다.
단순히 앉아서 하는 업무가 아니라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 다니고, 유동적이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는 이 업무가 꽤나 나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백퍼센트 나에게 맞는 일이란 없는 만큼 불편하고 힘든 부분도 많기에, 일을 하면서 든 생각이나 감정, 에피소드를 차차 풀어나가려 한다.
▼ 진로에 대한 고민 내용을 담은 지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