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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의를 시작했습니다

by 민짱이



취업을 하면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꼬박꼬박 월급이 들어오니 대출도 조금씩 상환하며 저축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하고싶고 꿈꿨던 일들도 조금씩 실천할 수 있게 됐다.

그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나름의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가족들의 문제" 말이다.





부끄럽지만 익명의 힘을 빌려 하나 고백하자면,

우리집은 굉장히 가난했고 현재도 그런 편이다.

건축 교수를 꿈꾸며 대학원을 다니던 아빠는 할머니 성화에 못이겨 할머니 사업을 물려받았다가 IMF 당시 쫄딱 망해버렸고 그렇게 신용불량자가 됐다.

엄마는 그 뒤로 돈까스 가게, 마트, 공장 등을 전전하시며 자식 새끼들을 건사하겠다며 쉬지도 않고 일하셨다.


자라면서 가난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하려고 하셨던 부모의 노력을 알고 있어 마냥 그들을 욕하기가 어렵다.

물론 본래 예민한 기질에 더불어 돈이 없어 여유가 없는 가족들의 마찰로 인해 학창시절에 많이 불안정했고, 우울감에 자해도 몇 번 시도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이만큼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건 과거의 여러 부분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기에 과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거에는 나의 미숙한 감정과 모습들, 무능력한 부모, 무기력하고 나태한 가족들 등이 모두 포함된다.


성인이 되고나서 대학교를 다니며 기숙사에 살며 가족들의 여러 문제들, 특히나 경제적인 부분을 내 일로 생각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외면했다는 말이 더 옳다.

하지만 나 포함 가족 모두가 경제적 지식이 전무하여 상황은 점점 악화되었고, 늘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부모의 가난은 자식에게도 고스란히 전염이 되곤 한다.


마음이 약했던 첫째언니는 취업을 포기하고 방에 틀어박혔고, 둘째언니는 저축은커녕 번 돈을 전부 다 탕진했고, 나는 생활비를 메꾸기 위해 학업과 네 개의 알바를 병행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생각없이 돈을 다 썼고, 막내는 정신적인 문제가 많아 가족들과의 마찰이 더 심해졌다.


이렇게 글로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니 어쩌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외면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 한 건 마음 한 켠에 여전히 연민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 문제는 많았지만 서로 애정하는 마음이 느껴졌으니까.


가족을 바꿀 수는 없으니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해보자.

그래야 내가 맘편히 살 수 있고 꿈꾸고 도전해볼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겠다.


화가 많고 우울감이 많았던 나는 그렇게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그로부터 작년 취업까지 약 4년이라는 시간.

개인적인 문제들에 더불어 그 사이에도 가족들과이 다툼이 많았다.

하지만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해보려는 마음가짐을 만들어주었다.

무엇보다 가족들의 문제를 해결해야 내가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달까.

그래서 더이상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바로, 지금' 해결하자는 마음이 가득해졌다.


사실 지금도 가족들을 보면 답답하고 속이 뒤집어질 때가 많지만(ㅋㅋㅋ)

그럼에도 나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들이기에,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

데면데면하다가도 어떤 문제에 다같이 최선을 다해 달려드는 게 가족 아니겠나.

또 각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이기에 더더욱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원하기도 했다.






제목 없음.png 가족회의 후 노션에 정리해놓기





첫 번째로 연 회의는 부모의 경제적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 우리 사남매의 마음과 일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각자가 건강한 몸과 정신, 그리고 탄탄한 일과 경제성을 갖춰야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한 사람 각자가 바로 서게 만드려는 나름의 계획이랄까.

시작은 소소하겠지만 분명 원하는 바를 함께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중요한 건 가족 회의를 하며 서로가 가진 현재의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고, 스스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들이 줄줄 나왔으며, 어떻게 성취를 이룰 것인지 의견을 모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작게는 미뤄왔던 운전 연수부터 헬스장 인수 목표까지.

작은 성공들이 쌓여 큰 성공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않나.


무엇보다 가족들끼리 시간을 보내면서 세상에 혼자가 아니며 나의 목표를 응원해 줄 누군가가 있음을 상기할 수가 있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의가 있다.






가족회의는 한 달에 한 번 외식과 더불어 진행하기로 했다.

매 회 안건은 달라질 수 있지만 대개 '커리어 목표'와 '부채 상환'에 맞춰지지 않을까 싶다.

나름 가족회의의 의장이자 서기로서 회의록을 정리하고 파일을 공유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도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단지 대화를 하고 목표를 공유했을 뿐인데 말이다.

새삼 가족들과 제대로 앉아서 속을 터놓고 얘기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고 이런 시간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느껴졌다.


앞으로 종종 가족회의록을 올리며 내가 세운 목표를 이뤄나가도록 부지런히, 부끄럽지 않게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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