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의 도슨트 일상 기록 EP01
첫번째 에피소드를 도슨트 후기로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사람'에 관한 기록을 하게 되어 유감이다.
그러나 일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바로 같이 일하는 사람인지라 이 주제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인물은 같이 도슨트로 일하는 직장 동료다.
먼저 우리 팀을 설명하자면 '전시운영'팀으로 매니저 1명, 부매니저 1명(필자), 도슨트 2명으로 이루어져있다. 물론 모두가 전시운영과 해설 업무를 다함께 진행한다. 다만, 관리자는 업무를 맡는 범위와 책임 정도가 다를 뿐이다.
문제 아닌 문제라면 두명의 직원 모두 회사 생활이 처음이라는 것.
어떤 업무를 지시하면 '왜' 해야하는지, 또 '공정'한지를 따져묻고, 그에 관리 직무가 처음인 나는 어버버 거리며 설득시키고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당연지사 일보다도 사람에 지치기 시작했고, 나의 표정도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갔다. 어떤 업무를 지시했을 때 매번 납득시켜야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니까.
전시운영 업무의 가장 기본은 전시 오픈과 마감이다. 전시장 내부의 소품 등을 정돈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기에 출근하자마자 하는 일이다.
사람인지라 일이 익숙해지다보면 당연히 느슨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보면 실수가 생기고 그 작은 실수가 큰 문제로 유발되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 신경써야하는 부분이기에 두 명이 각각 정해진 장소를 오픈하면 번갈아가며 더블체크를 해야한다며 말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 말에 힘이 없었던 건지, 그도 아니면 그냥 내가 만만했던 건지 가장 막내 팀원이 매번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충 오픈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기 아침을 먹기 바빴다.
처음에는 나를 탓했다.
내가 문제인가? 왜냐하면 그 팀원은 매니저님이 시킨 일은 곧잘 수행했으니까.
나를 향해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나도 관리업무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고민을 매니저님한테 털어놓았더니 매니저님도 이런 고충을 잘 안다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에따라 관리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필자의 기준으로만 사람을 생각하면 안된다며 사람의 업무 습득력과 처리방식이 다 다르다고 했다.
-oo님 같은 경우는 그래도 시킨 업무는 해내려고 하니까, 같은 일을 계속계속 상기하고 시켜야돼요. 그렇게 열 번 말하면 나중에 한 번은 하게 되니까요.
그럼 맨날 해야되는 업무를 매번 상기시켜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되면 모두가 힘든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수밖에 없잖아. 정말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훨씬 사람 경험 많은 매니저님이 하는 말이니 일리가 있겠지. 신기하게도 그런 방식으로 지시를 하니 한동안은 편해지긴 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를 놓쳤지만 말이다. 바로 그 팀원이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계기가 있다.
-oo님, 1층에 있는 안내판을 2층에 갔다놓고 2층에 있는 걸 1층에 가져다 두세요.
-아, 힘든데... xx님(필자)이 하시면 안돼요? 어차피 2층 올라가실 거잖아요.
그순간 내 감정과 표정은 제어되지 않았고, 혼자 씩씩거리며 그 안내판을 들고 2층으로 향했다.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그 찡그린 얼굴을 한 대 후려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더 화가났더 건 전시 소품들이 다 이리저리 놓여져있고 더러운 걸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날의 2층 오픈 담당은 oo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oo과 나의 냉전은 시작되었고, oo이는 xx님이 감정 조절을 하지 못해 같이 일하기 힘들다며 매니저님께 하소연했다. 그때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평생 자신의 잘못은 알지 못하겠구나. 그를 대할 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표정에 다 드러나게된 게 나의 큰 실책이었고, 매니저님께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 그런 부분은 분명 고쳐야 되는 부분이라고.
당시에는 억울했지만 어쨌든 일할 때의 내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나쁘진 않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먼저 사과했고, 적어도 자신도 반성한다는 답장을 받았다.(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지금도 함께 일하는 중이다.
그 다음에 oo의 태도가 바뀌었냐고?
답을 하지 않아도 그 답은 모두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 나아졌을까.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닮게 될 것이다.
흙투성이인 사람과 어울리면 자신도 어느 정도 더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힘들다는 점을 기억하라.
나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둘 것인지, 또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 내게 인사권은 없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동료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질 필요는 없고,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도록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는 있겠다. 맡은 바 업무에 최선을 다하고 유능한 동료를 가까이하며 본받을 테고, 나를 갉아먹는 류의 직원과는 되도록 멀어질 테다. 무엇보다 그 사람 때문에 감정 소모하며 부정적인 에너지로 하루를 채우기에 내가 너무 소중하다. 그러니 스토아 철학이 말하듯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야지. 더 좋은 사람과 환경에 집중해도 아까운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