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당황스러운 관람객의 질문

비전공자의 도슨트 일상 기록 EP02

by 민짱이

'도슨트'라는 이름을 달고 업무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안되서 첫 해설이 있었다.

애초에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라 관람객 자체도 몇 없었기에, 관람객의 요청이 아니라 나의 요청(?)으로 하게 된 해설이랄까.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보고 싶어했나보다.)


해설 대상은 중년의 부부였고, 평소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었다.

주어진 대본을 머리를 쥐어짜내 암기하고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첫 해설.

물 흐르듯이 해설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무릇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 아니겠나.

중간 중간 멈칫하며 누가봐도 '나 암기했소'를 티냈지만 그럴때마다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해설을 진행하며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내 머릿속 정보들을 어떻게든 끄집어내 전달하려 노력했다.


거의 해설이 마무리 될 때쯤, 한 분이 질문을 던지셨다.

'이 영상이 실제 공연에서 쓰인 영상과 같나요?'

아뿔사.

그것까지는 잘 모르는데요...


그순간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모르는 것을 적당히 아는 척 하며 거짓말을 늘어놓되 체면을 지킬 것인가.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고 전문성은 좀 떨어지는 해설자가 될 것인가.


물론 난 후자를 택했고, 지금도 그 선택은 아주 잘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 떳떳할 수 있는 선택이었으니.


-죄송해요. 제가 그 부분까지는 미처 공부하지 못했네요. 학예사님께 여쭤보고 다음에 오시면 그때 답변 드릴게요. 질문 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가끔씩 허를 찌르는 질문을 하는 관람객들이 있다.

그럴때마다 등 뒤로는 식은땀이 주르륵 흐르지만, 그런 점이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도슨트 업무는 단순 암기가 아니다.

정말 세세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공부해야만 관람객에게 더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전시를 소개할 수 있다.

가끔 미리 공부한 내용을 질문해주는 관람객 덕분에 더 즐겁게 알아가기도 하고.

이렇게 조금씩 정보를 확장하며 해설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빌런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