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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에 고독한 예술만이 숨이 된다

내 마음대로 전시보기 EP01: <론 뮤익 전시>와 <시지프 신화>

by 민짱이


사실적이고 세밀한 조각으로 유명한 호주 출신 작가 '론 뮤익'. 한국 최초의 개인전이 열린다기에 쉬는 날에 부랴부랴 전시를 보러 갔다.



작품 <자화상>과 실제 론 뮤익



처음 맞이하는 작품은 <자화상>으로, 론 뮤익이 자신의 얼굴을 묘사했다. 수염 하나하나를 살린 디테일한 연출에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사실적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규모나 섬세함 이외에 큰 감흥은 없었다.





다음 작품은 <침대에서>로, 실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놀랐던 지점은 극사실주의인 팔뚝살과(ㅋㅋ) 이불의 주름. 그리고 언뜻 공허해보이기도 하는 눈빛까지.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준다.





<치킨/맨>은 언뜻 엉뚱하게 느껴지는 조합을 통해 신선함을 선사한다. 노인의 표정과 닭의 경계어린 몸짓을 보면 서로 겨루고 있는 듯 보이지만,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한 아이러니한 작품이다.





1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매스>다. 해골들이 떼지어 있어 압도적이고, 사진을 찍기위해 몰려있는 관람객 역시 나를 압도했다. 이외에도 재미난 작품들이 많지만 스포방지를 위해 작품 소개는 여기서 마치려 한다.









론 뮤익은 인생의 순간들을 조각하는데, 사실적인 묘사에 비해 크기는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마치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그려놓되 모두의 경험은 아니라는듯이. 또한 전시의 구성적 측면에서도 마지막에 놓여진 작품 <매스>가 해골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모든 생명체의 종말은 결국 죽음이라고 상정하듯 말이다.



작품은 대개의 경우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은 어떤 철학의 귀착점이며, 조명이며, 완성이다.
그러나 작품은 그 철학의 겉으로 표현되지 않은 암시들에 의해서만 완전한 것이 된다.
p154, 민음사,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고통과 고독, 모성애, 비겁함 등등, 그의 조각에서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는데 그 너머에 삶의 종말 즉 '죽음'이 암시된다.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결국 죽는다. 이는 단 하나의 명확한 진리다. 감정에는 늘 '현재'가 있다. 느낀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론 뮤익 작품 속 수많은 삶의 순간과 감정을 보고 있노라니 외려 그 너머에 있는 진득한 죽음이 더 강하게 느껴지고 만다.




전쟁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오직 그 전쟁으로 인하여 죽든가 살든가 해야 한다. 부조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부조리와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것, 그것이 주는 교훈을 인정하고 그것의 삶을 되찾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조리한 즐거움의 전형은 바로 창조다. “예술, 오로지 예술.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 있기에 진리로 인하여 죽지 않을 수 있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p144, 민음사,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또 론 뮤익 전시에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가 떠오른다. 세상은 부조리하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와 실제 세계에는 큰 괴리가 있는데, 그에 좌절하고 삶에서 벗어나려는 행위는 굴복일 뿐이다. 삶이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그 속에서 계속 살아가는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고 말한다. 시지프가 바위를 끝없이 굴리면서도 절망하지 않듯, 인간은 삶이 무의미함을 깨달을 지라도 계속 살아가면서 부조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론 뮤익의 작품은 인간 삶의 보편적인 순간을 담았지만, 인물의 눈빛에는 언뜻 공허함이 엿보인다. 무의미한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 끊임없이 시지프가 떠오르게 된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다.
p135, 민음사,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론 뮤익 전시>를 총평하자면, 결국 알베르 카뮈가 말하듯 다시 삶 속으로 뛰어들어가 반항, 자유, 열정을 삶에 실천하자는 것.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부조리의 더 깊은 굴레로 빠트린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자명하다. 각자가 특별하다고 믿고 싶지만 크게 보면 인간들의 삶은 보편적임을 인정하고 계속 살아가야만 한다. 나를 절망하게 만드는 부조리에 저항해야만 인간다운 자유를, 창조적인 열정을 키워나갈 수 있다. 수많은 예술가가 그랬듯이 우리 모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보다 인간다운 삶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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