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매번 주기적으로 글을 쓰자 다짐하지만, 눈만 잠깐 돌렸을 뿐인데 벌써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바람이 다가오는 계절이 됐다. 현재 대학원을 준비중이기도 하고, 아빠가 많이 편찮으셔서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 모르겠다. 어느새 추석이지만 박물관은 추석에도 당연지사 개장하기 때문에 오늘도 출근을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며칠전부터 마음 한구석이 찌르르 아파와서 이 고통을 어떻게 해소해야할 지 모르겠다.
실은 7월 초쯤에 같이 일하는 경비한테 성희롱 피해를 당했다. 그전부터 몇번의 성희롱이 있었다.
처음은 내 겨드랑이 밑 브래지어를 쿡 찔렀고, 다음은 배고프다며 내 팔을 가져가 무는 시늉을 했으며, 마지막으로 내 뒤에서 우비로 나를 본인 품에 가두는 행동을 취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남자 품에 안겨본 적 없지?'라는 망언까지.
그전에 친하게 지내기도 했고, 직장 내 성희롱을 어떻게 대처해야하는 지 몰라 눈물만 뚝뚝 흘리며 친구들한테 욕만 했다. 멍청하게도. 성희롱 피해보다도 7월 말에 있을 재계약에 문제가 생길까 지레 겁먹고 신고를 망설였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감정을 어떻게든 녹여내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명치 끝의 고통은 최근에 우리팀에서 친한 동료 한명이 그 사람과 사적으로 술자리를 가지며 시작됐다. 해당 동료는 직장에서 만난 사이지만 동갑이고 서로 고민도 비슷해서 친하게 지냈다.(최근에 대화를 하며 이것이 나의 개인적인 착각이었음을 알게됐다.)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성희롱 피해 사실을 얘기 했고 어설픈 위로에 당시에 많이 힘이 되기도 했는데. 그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가해자와 사적으로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배신감이 들었으며, 성희롱 피해자로서는 나의 피해 사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들이 존중받지 못한 듯한 기분에 가슴이 쓰라렸다.
'그냥 장난 치신 거 아니에요?'
나의 과민 반응으로 몰고 가는 그 무심함이, 나를 더 괴롭힌다.
아, 고통은 역시 개인의 몫이기에 나눠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괜스레 서글프다.
주변 사람들에게 성희롱 피해 사실을 알리면 모두가 흥분하며 미친거 아니냐며 함께 욕을 해준다. 하지만 곧이어 내가 '신고'에 대해 언급하면 모두가 비슷하게 입을 다물어버린다. 성희롱 신고를 했을 때 처벌의 수위가 어떨지도 모르고, 증거가 유효할지도 모르고, 이것저것 재다 보면 결국, 피해자는 피해자로 남는 게 가장 이로우니까. 피해 사실을 애써 잊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행위는 그 이상으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그날의 고통을 인생에 있어 하나의 시련으로써 받아들이며 극복하며 살면 되는 건지.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는 건지. 너무나 궁금하다.
이제는 성희롱 사실에 더해 사람에 대한 배신. 또 성희롱 피해자가 가지게 되는 복합적인 감정들은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약간의 절망에 가슴이 턱 막힌다. 막히는 숨을 억지로 토해내는 출근길과 가해자의 얼굴을 매일 봐야하는 그 껄끄러움을 감당하는 것까지 모두 나의 몫일까.
점점 나조차 나의 감정을 배반하고, 나를 의심하게 된다.
그냥, 그 사실이, 못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