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접어든 산은 밤송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얼른 밤나무가 눈에 띄지도 않는데 다른 나무 사이에 숨어 있나 보다. 하지만 사람의 통행이 많은 곳은 이미 속이 텅 비어있다. 동생이 재미로 고슴도치 같은 밤송이를 툭툭 건드려보더니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알밤을 줍는다. 알도 잘고 개수를 세어도 될 정도다.
여기까지는 재미다.
점점 인적이 드문 길로 접어들자 밤송이에 밤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게 여기저기 눈에 띈다.
"어, 밤이 왜 이렇게 많아? 알도 크고 실한데?"
호기심과 재미가 탐욕까진 아니더라도 이글거리는 욕망으로 변해간다.
"이거 주워서 나눠도 되겠어! 하하하."
가방에 들어있던 비닐까지 꺼내 들고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간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밤은 줍기만 하면 그만이지만 대부분은 노력이 필요하다. 밤송이를 신발 아래에 두고 양쪽으로 벌린다. 어떤 것은 이미 벌어져 있기에 살짝만 힘을 줘도 윤기 나는 밤알들이 나란히 줄을 서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 초록송이들은 요령도 필요하고 힘도 더 들어간다. 무작정 힘만 쓴다고 속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게다가 가시에 언제 찔릴지 모른다.
그렇게 정신없이 모으니 금세 비닐이 꽉 찬다.
그때,
"언니,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그래? 그럼 그만하고 가자. 어디로 가야 하나? 마을로 내려가면 빠르겠다."
그런데,
화장실이 급하다더니
왜 안 가고 밤만 줍니?
"화장실 안 가? 내려가야지?"
"언니, 괜찮아. 눈앞에 밤을 보니까 그냥 갈 수가 없어. 욕심이 생기네. 욕망이 생리 욕구를 이기네. ㅋㅋㅋ"
우리는 깔깔대며 웃는다.
어느새 검정 비닐을 가득 채운 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제 그만 내려가자며 발을 재촉한다. 터질듯한 비닐봉지를 보며 우리는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이 만큼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으리라. 분명히.
음, 인간의 욕망이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님을 여기서 깨닫게 될 줄이야.
마을로 내려가 화장실을 다녀온 동생. 우리는 다시 산 길을 거슬러 올라 처음 출발지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에서 산으로 연결되는 생소한 길을 선택하고 비탈진 오르막을 걷는다.
"이거 뭐야? 다 밤이잖아. 알이 왜 이렇게 굵어. 심지어 안에 그대로 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이 돈다. ㅋㅋ
지금까지 밤 중에 제일 알도 굵고 반짝반짝 윤기도 난다. 이걸 어떻게 두고 가! 욕망, 아니 탐욕에 불이 붙는다. 화르르....
"이건 그냥 못 지나가지."
이미 더 넣을 비닐도 없건만 그건 나중 문제다.
줍고 밤송이와 씨름하고 또 줍는다.
"이거 먹어야 해. 먹기 싫어도 먹어."
결국 우리는 배낭에 든 간식을 꺼내 먹고 마시며 부피를 줄이고 수건도 꺼내고 그 자리를 밤에게 양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