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아침부터 뜨겁게 달구어지기 시작하지만, 산길은 나뭇가지가 그늘을 만들어준 덕분에 햇살에 노출되지 않고 걸을 수 있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한참을 걷다,
"이 길을 처음 걷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다른 느낌이지? 분위기가 달라. 처음 오는 기분이 든다."
라고 말을 하자,
"다른 날은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어서 그랬겠지. 오늘은 조용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걸 거야."
라며 옆에 있던 남편이 말한다.
"그래도 어쩐지 다른 길을 걷는 것 같아. 묘하네."
정말 그랬다. 산길이 거기서 거기처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산을 오면 걷던 길이 오늘은 뭔가 다르게 느껴진다. 산 밑 주차장을 거의 채우고 있던 차들에서 내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도 어쩌다 두어 명이 지나갈뿐이다. 굽이진 산길에선 뭔가 신비한 느낌마저 드는 것은, 아침 산의 기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묘하다 생각했던 그 길은 역시 다른 길이었다. 어느 갈림길에서였을까? 길 눈 밝은 남편이 초행도 아닌 길을 헷갈리다니 참 별일이다 싶다. 나는 뭐 아는 길도 헤매는 건 다반사라 놀랄 일도 아니지만. 어쩌면 이 길을 걸어보라는 자연의 이끌림!
그렇게 낯선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 이 나무를 만나기 위해 이 길로 들어섰던가? 단번에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가 새로운 경험과 생각을 하게 한다.
나뭇가지가 휘어져 하늘로 자라고 있는데 그냥 봐도 앉고 싶게 만드는 모양이다. 어쩜 저렇게 휘어져 자랄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앉아본다.
"저 나무는 하필 저 자리에 저렇게 자라서 다 앉아 보고 가겠네. 나무는 싫을 수도 있겠다."
라고 내가 말하자,
"혹시 알아? 사람들이 와서 앉아 주고 관심 가져줘서 좋을지. 자기가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게 해 줘서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라고 말한다.
나무는 말이 없는데 한 나무를 보고 다른 생각을 품는다. 나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그, 이 사람들아. 그게 뭐가 중요하냐. 나는 단지 여기 서 있을 뿐인 걸. 그냥 사실만 봐. 자꾸 무언갈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무의 말처럼 나는 아니 우리는 사실만 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무엇을 보아도 내 방식대로 해석을 해 버리는 게 우리들이다.
오해도 다툼도 고통도 결국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 방식, 그러니까 고정관념, 편견, 선입견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마음의 작동이 무의식적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마음의 작동 방식.
남편과 짧은 대화 속에서도 다른 생각을 한다. 문득 남편과 살면서 얼마나 의견이 일치된 적이 있었나 생각을 해 본다.
"음, 참 없다."
서로 어깃장을 놓으려는 사람처럼 생각이 다르게 산다. 어쩌면 내 고정관념과 편견이 가장 깊게 작용하는 사람이 남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웃어야 하나?
조금 말랑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이 말이다. 내 마음의 방식이 조금 바뀌어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