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1 프리패스하는 감정의 도발

휴, 언제쯤

by 소행성RDY


유독 나는 남편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 똑같은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웃으며 흘렸을 말도 남편의 입을 통해 나오면 반사적으로 반응할 때가 많다. 그것도 자동반사다.


왜 그럴까?

내가 이 사람에게 기대하는 게 많은 것일까?

그의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가?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오기인가?

나의 반론은 보편타당하지만 당신의 말은 편견투성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은 것일까?

나는 상처 주지 않은 언어를 쓰지만 당신의 언어는 너무 투박하고 과격하다고 알려주고 싶은가?

왜 같은 문제의 반복인가?


상황은 다르게 펼쳐지지만 들여다보면 문제의 본질은 같다. 얘기하다 보면 일 년 전에 했던 말을 지금도 한다. 기가 막힌 일이다.


왜 이렇게 답답한 일이 반복되는 걸까?

내 생각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거짓 자아, 에고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리라.


에고는 비교하고 판단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고통받게 한다. 내가 남편에게 주로 하는 생각들은 다 에고가 좋아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예전대로 반응하게 한다. '봐. 그럴 줄 알았어. 여전히 하나도 안 변했네. 나도 내 생각을 굽히지 않겠어.'라며 불편한 대화를 한다. 그리고 침묵이 흐른다. 이 침묵 또한 익숙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예전엔 어디에도 거치지 않고 프리패스하는 감정에 속수무책이었고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감정과 하나가 되었다면, 이제는 또 감정이 일어나 초고속으로 말로 튀어나오더라도 내가 하는 짓을 안다. 감정과 분리되어 지켜보는 자가 되기도 하니 많이 발전했다 하겠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반응하는지 깨달았다고 해서 금방 변화가 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행동도 생각도 습관이 되어있기에 의도적으로 깨어있어야 희망이 있다.


남편은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문제는 문제라고 생각할 때 비로소 문제가 된다는 말이 있다. 우린 서로 다를 뿐이다. 에고의 생각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 깨어있음으로 말이다.


눈곱만큼이라도 내 생각이 몰랑몰랑해졌기를 바라본다.

남편, 미안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