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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26. 2023

환상속의 그대

이게 아닌데??


학창 시절부터 조용한 성격은 아니었다. 리더의 역할을 많이 맡았고, 가무를 좋아하고 흥이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투표에서는 항상 1,2등을 했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면 학급임원이나 학생회까지 활동하며 어떤 모임에서도 중심 쪽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있었고, 그게 당연하게 여겨지곤 했다.


그 시절 친구들은 내가 가수나 개그우먼이 될 줄 알았을 거다. 각종 노래 대회에 참가하여 입상까지 할 정도로 – 또 대학교 때에는 학교를 대표하는 홍보도우미 선발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었으니까.


그래서 누구의 그림자로 산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고, 그림자 삶의 대표 격인 비서로 살게 될 줄을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창기 비서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그리고 꿈꿔왔던 생활이 아니었다.


언제나 단아한 옷차림, 우아하게 걸으며 미소를 머금고~ 업무내용을 상사와 의논하는 그런 상황은.. 정말이 지 단! 언! 코! 내 비서 시작 1년 동안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해서 언제나 허둥지둥 거리며 얼굴은 상기되어 있고, 업무 지시에 회신은 항상 늦었으며, 전화조차 잘 연결하지 못해서 도중에 끊어 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내가 상사였다면 나를 참아내지 못했을 텐데… 그때의 상사는 인내심이 누구보다도 출중하고 탁월한, 그야말로 영화 속에나 존재할 법한 리더였기에, 나를 지켜봐 주고 성장시켰으며, 일 처리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이끌어주었다. 십여 년 지난 지금에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으니 내 생애 얼마나 귀한 분이란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다시 비서의 생활로 돌아와 말해 본다면,

몇십 년씩 한 분과 일하고 있는 주위의 베테랑 비서들은 그 삶이 결코 화려하지 않다. 누구를 온전히 서포트하기 위해서는, 본인보다 그 사람을 더 빛나게 하고, 그 사람의 과오도 나의 것으로 덤덤히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년간 여러 상황을 극복해 내며 훈련받았던 그들은 본인을 스스로 높이지 않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상사가 스케줄을 더블로 만들어 놓아도 비서는 그것이 본인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사과의 말까지 전하곤 한다. 물론 억울한? 면이 있긴 하겠으나 상사의 마음이 편해야 비서도 편하다. 이것은 정말 사실이다.


회사에서도 나의 이름보다는 00 사장 비서, 00 회장실과 같이 불려지는 경우가 많고, 상사와 함께 묶여서 평가받거나 그 처우가 정해지기도 한다. 주로 상사에 의해 성과평가를 받기 때문에 한 우물만 파면되기도 하지만. 한 우물만 파야 하는 역설적인 어려움도 있다. 이는 비서의 업무가 직속 임원을 서포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직속 임원과 호흡을 잘 맞추지 못한다면, 보직전환이나 퇴직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서의 업무 특성상 현업부서에서 다루는 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실무 부서로 옮기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상사의 스케줄에 따라 비서의 점심시간, 저녁약속, 휴가가 결정된다. 이것이 가장 큰 고충일지도 모르겠다. 점심시간을 특정할 수 없기에 식사 mate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 혼밥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아지고, 결국 김밥집 VIP가 되기도 한다. 저녁약속은 상사의 회의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시작되며 나의 인간관계는 그런 것들을 이해해 주는 찐친들과의 만남만으로 겨우 유지된다.



가장 큰 충격과 공포는 휴가를 상사에게 맞춰야 한다는 것인데, 상사가 미리 휴가일정을 정해서 비서에게 힌트? 라도 준다면 감사하겠지만 업무로 바쁜 상사가 미리 일정을 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성수기에 그것도 2-3주 전에야 알게 되는 일이 빈번하고 그 이유로 극성수기에 최고가로 휴가를 다녀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비수기에 편안한 마음과 합리적인 비용으로 내가 가고 싶을 때 가는 휴가….  는 정말 미안하지만… 다음 생애에 꿈꾸도록 하자.



그리운 발리.. 언젠간 다시 갈 수 있을테지.. 아련~



사진출처: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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