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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26. 2023

고독의 일상

ENFP와 INFP 그 사이 


인간의 고독함이야 죽을 때까지 해결되지 않는, 누구나 에게 있는 문제라고 하지만 비서에게 있어서 고독은 그 깊이와 무게가 더 깊고 크다.



일단, 물리적으로 비서의 자리는 거의 단독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주로 임원실을 들어가기 전에 비서 자리가 있기 때문에 현업부서들과는 층이 다르거나 문으로 가로막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비서의 공간에는 주니어비서+시니어비서 이렇게 팀으로 있거나 혼자 근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러한 근무환경을 선호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1-2년이 지나고 그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이런 근무환경이 외로움을 불러올 때가 많다.


그렇지만 외로움의 근본은 아마도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얼마나 성장했으며,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와 같은 문제들을 함께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비서의 생활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밤낮주말할 거 없이 상사의 연락의 범주 내에서 생활해야 하며, 업무 지시가 있으면 휴가지에서도 노트북을 꺼내야 하는 삶.

그렇지만 사람들의 시야 안에서 이루어지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는 것. 오롯이 상사의 인정을 받아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또한 비서의 업무는 누군가와 협력하기보다는 상사의 지시사항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그 의사가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현업부서에서 “자기가 임원이냐” “찔러도 피 한방 울 안나 올 거 같다” 등의 미움을 사기도 한다.


나 또한 초년에는 상사의 의견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할 까봐 다소 경직된 모습으로 내용을 전달하다 보니 그런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두려워해서 업무를 하는 데에 소극적이 된다거나 지시 내용을 축소한다거나 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또한 종종 비서를 통해 상사의 근황이나 스케줄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계획된 친절을 통해 비서의 경계를 풀고 정보를 가져가려고 할 때도 있는데, 보안이 중요한 비서에게 정말 피해야 할 사람들이다. 비서는 본인의 작은 말실수 하나로 큰 스캔들에 휘말릴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와 어울리고 있어도 정신 차리고 있어야 하고 실수를 신경 써야 하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말 수를 줄이다 보면.. 활발 적극적이었던 사람도 점차 스스로 고독을 자처하는 선택적 고독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어떤 기회를 통해서든 본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겸손하게 생활한다면 그런 오해들을 푸는 건 단지 시간의 문제가 될 것이니 너무 당겨 걱정하지는 말자.


물론, 비서실에 혼자 앉아서 일을 처리하면서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전화통화를 한다거나 이메일을 주고받기 때문에, 그럴 기회가 쉽게 찾아오지 않을 거라며 낙심할 수 있지만 회사동호회에 가입한다거나, 부서 회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작은 기회들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타 회사의 비서들과 연락할 때에도 목소리나 이름 직함 등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통화 시에 “비서님”이라고 부르기보단 “00 차장님”, “00 부장님 안녕하셨어요?”라고 시작한다면 상대방이 더 호감을 가지고 일 처리를 해줄 것이다.


비서들과 전화를 하다 보면 확실히 연차가 많다거나 오랫동안 이쪽? 에서 일 한 사람일수록 더욱 친근하고 겸손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런 분들의 업무협조요청에서는 하나를 해달라고 했어도 두세 가지를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샘솟곤 한다..


그러니 비서에게 고독은 default라는 정신무장으로 고독한 생활을 스스로 즐겁게 살도록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지내다 보면 여러 노하우도 쌓이기 마련이니 고독한 생활에 대해 몰입하지 말고 즐기는 삶의 태도를 가져보자.


어쨌든 비서는 어디까지나 상사를 위해 존재하고 상사의 업무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 그러다 보면 진심으로 홀로 고독하게 가고 있는 나를 인간적으로 응원하고, 곁에 두고자 하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비서 자리는 그  자체가 주는 무게감 때문에라도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부디 당장의 고독을 힘들어 말고 나와 결이 같은 사람들을 만나 동맹하여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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