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의 통달자
올해 내가 들은 질문 중에서 가장 대답하기 어려웠던 질문이었다.
(여기서 그런 거라는 것은- 업무매뉴얼 만들기, 사내강사 도천하기, 회사 동호회 가입하기, 삶에 대한 에세이 작성하기, 브런치 작가 되기, 음악회 출연 등)
오랫동안 답을 찾았다. 답을 찾는 데에 몇 개월의 시간을 흘려보낼 만큼.
그래, 왜 난 쉴 새 없이 뭘 찾아 나서는 거지? 왜 새로움에 목마르지?
왜 멈춰 가만히 있는 걸 즐기지 못하는 거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오늘 아침 함께 글 쓰는 #라라크루들과 잡담을 하다가 불현듯 찾게 되었다.
그래!
나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었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살고 싶었다.
시멘트 색깔의 세상에서 벗어나 좀 더 나를 채근하고, 기대하게 하며
호기심으로 이끌어 두근거리게 하는 삶으로
나는 그런 삶으로 향해 가고 싶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모두 병환으로 일찍 돌아가신 탓에
나는 죽음을 다른 내 또래보다 조금 먼저 알게 되었다.
삶과 죽음이란 것이 다르지 않고, 삶의 끝자락에서 만나는 죽음이란 것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 있어도 죽어 있고, 죽어 있어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어디 한둘 경험해 보았을까?
그러니 다만 살아서 삶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의연하여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오늘도 “귀찮은 그걸” 또 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