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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korea Nov 22. 2022

첫 발을 딛다.

선택… 그리고 떨림

2007년 4월 9일 새벽 5시, 늦잠 많은 나지만 오늘만큼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한참을 누워 생각해 본다. 아무리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맞는 길일까? 돌아오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아냐. 그래도 육군 장교로 복무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그리고 다짐해 본다. 선택한 길 후회 없이 도전해 보기로…


4개월 전 직장을 옮기기로 하고 서너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세 개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두 곳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기업이었고, 나머지 한 곳은 호기심에 넣었는데 합격통지를 받아 좀 의아했다. 일단은 대기업 중 한 곳을 정했고, 며칠 후 (합격여부와는 무관한 상견례 같은) 회장님 면접이 남았다고 해서 아침 10시에 강남 본사에 도착했다. 대략 30여 명 남짓이 한 곳에 대기 중이었는데, 관리자로 보이는 분이 인원을 확인하고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두 시간을 기다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짜증이 난 상황에서 관리자가 다시 들어오더니 회장님 일정 관계로 면담은 오후로 연기되었고, 지하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면 된다며 식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내가 무슨 용기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회장이 신입 직원과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 회사에서 기대할 건 없겠네’라는 생각에 식권을 두고 나와 버렸다. 물론 평소의 나라면 절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선택 후에 나머지 회사도 가고 싶지 않아 졌다. 건설회사에 입사해서 남들과 같이 경쟁하고 눈치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현장소장(대학 때 토목의 꽃은 현장소장이란 말을 많이 들었다) 하고, 퇴직하면 나면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조회해 봐도 정보가 없고,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는 그곳… 개성공단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운명이 아니라면 이 같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그렇다. 개성공단은 지금도 나에게는 운명 같은 존재이다.


월요일 아침에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금요일 저녁에나 남측으로 나온다는 회사의 사전 안내에 따라 옷가지(책, 전자기기 등은 가급적 가져오지 말 것)를 캐리어에 담아 6시 40분에 서울 본사에 도착했다. 35인승 버스가 대기 중이었고, 선배로 보이는 20여 명이 버스 출발 전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핑계 같지만 대북사업자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흡연자다). 드디어 출발… 신촌을 지나 강변북로에 접어들었고, 그렇게 한강을 따라 40여분을 달렸다. 임진강 민통선 지역에 도착하고 나니 4월 제법 따뜻해지려는 계절임에도 왠지 추위가 몰려왔다. 인원 확인을 마치고 5분여를 더 달리니 도라산에 있는 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하였다. ‘개성’, ‘평양’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 정말 북한에 가는구나!

잠시 뒤, 출경 심사가 시작됐다는 안내 방송이 있었고 백팩이나 캐리어를 끈 200여 명이 줄을 서서 출입과 세관 검사를 받았다. 버스에 탑승해서 앞쪽을 바라보니, 100여 대의 승용차와 화물차가 줄을 지어 서 있고, 저 앞에는 굳게 닫힌 철문 양 옆에 군인 두 명이 총을 메고 제법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8시 30분, 호루라기 소리가 크게 한차례 들리더니 청색 깃발을 단 군용 지프차 한대가 출발하고 뒤 이어 차량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철문은 두 군인의 우레와 같은 경례 소리와 함께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더니 지프차를 선두로 차량이 꼬리를 물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냥 평범한 도로다. 분명 비무장지대로 진입했다고 하는데(한 선배의 설명이다) 긴장감은 없다. 2~3분 뒤 선배가 저 앞을 가리키며 ‘저기부터는 북한 땅이다. 긴장되지?’. 우리 군대 지프차와는 다른 조금은 낡은 지프차 한대가 저 앞에 대기 중이다. 우리가 다가가자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낡은 지프차가 선두에 서고, 우리 지프차는 ‘이제부터는 저걸 따라가면 돼’라고 하듯이 유턴을 하며 빠져나간다. 도로는 바뀐 게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북 간 연결도로는 군사분계선 이남은 남측이, 군사분계선 이북은 북측에서 남측이 지원한 자재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2~3분 뒤 커다란 건물 앞에 차량이 멈추어 섰고 버스에 있던 동료들이 짐을 챙겨 하나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북측 통행검사소다.

진녹색 군복 차림의 군인과 회색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뭘 본거지? 진녹색 군복 차림의 군인 허리춤에 권총을 차고 있다. 3년간의 장교생활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북한 군인을 민간인이 된 지 3년 만에 보게 될 줄이야.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정말 잘한 선택일까? 총으로 위협하면 장교의 명예를 걸고 싸워 이겨야 하나?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그들과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선생. 오라’ 조금은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였다.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출입 검사대 같은 곳에 앉아 있는 군인이 나를 향해 손짓을 하는 것이 보였다. 서너 걸음 다가가 방문증명서를 내밀었다. ‘선생은 공업지구에 처음 오나?’ 북한 군인의 질문에 ‘네. 처음입니다.’ 대답했다. 나와 방문증명서를 번갈아 보다가 ‘맡은 업무가 뭐요?’라고 묻는다. ‘관리위원회입니다.’ 대답하자 ‘아’ 한마디 후에 방문증명서에 도장을 찍어 건네준다. ‘다음’ 이게 북한 군인과 한 첫 대화다.(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진녹색 군복 차림의 이들은 통행검사소 직원이다. 우리나라의 출입국 역할을 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사회주의국가이다 보니 군복을 입고 통행업무를 담당한다.)

다음은 세관검사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남측에서 지원해 준) X-레이 검사기에 캐리어를 올리니, 인원 검색대 밖에 있던 회색 정복을 입은 사람이 긴 봉으로 손짓하며 들어오라고 한다. ‘삐~’ 소리와 함께 검색대를 통과하자 봉으로 온몸 구석구석을 훑더니 X-레이 검색대로 가라고 손짓한다(남측 여성은 북측 여성 세관원이 검사한다). 검색대 앞에는 다른 회색 옷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고 내 캐리어를 열어보라고 한다. 회사에서 사전에 안내를 해 주었으니 옷가지와 간단한 세면도구만 있다. 손으로 가보라고 손짓해서 가방을 정리해서 밖으로 나왔다. 참 뭔가 떨리기도 하지만 찝찝한 기분이다. 그래도 육군 장교로 지내면서 작전, 교육, 정훈, 정보장교로 지냈는데, 뭔가 북한군에게 진 거 같고 주눅 들어 있었음에 후회가 밀려왔다. 당당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입에 물고 주변을 살펴본다. 왼쪽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는 산이 보였고, 오른쪽에는 넓은 논이 펼쳐져있다(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판문역'이 있다). 몇 백 미터 앞에는 공장 몇 개가 보였는데 개성공단이라고 선배가 설명해 준다. 다시 버스를 타고 1분여를 이동하니 공단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부터는 또다른 남측이다. 도로나 공장들이 남측에서 보던 것들이다. 조금 전까지의 긴장과 약간의 두려움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이제 시작이다. 잘한 선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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