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를 든 사회복지사》16화. 꼼짝도 못하는 20년

by 김정은

"지체장애로 도움 없이는 집에서는 꼼짝도 못해요"


지체 장애가 있다고 해서, 비록 누워 계셔야 한다고 해서 꼭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 사업체를 운영할 만큼 다부지고 여장부셨던 할머니는 낙상으로 인해 허리뼈가 골절되었고 여러 차례 수술하였지만 회복하지 못하시고 약 20년간을 하반신 마비로 사셔야 했습니다.


점점 빠지는 근력


근력이 점점 빠지게 되면서 침대 밖으로는 외출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은 어르신이 65세가 넘으셨기 때문에 장기 요양 등급으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셔야 했는데, 하루 4시간 정도의 요양보호사 도움으로는 하루를 살아내기에 버거우셨습니다.


요양보호사가 없는 시간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집으로 돌아가시면:


드시고 싶은 음식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드실 수 없었고

머리를 감고 깨끗이 씻고 싶어도 도움 없이는 씻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가 하루를 보내는 일상은 늘 똑같았습니다. 아침 일찍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고 돌아가시면 늘 혼자 계셔야 했습니다.


20년간의 생활 노하우


20년간 할머니는 지체장애인으로 사셨기 때문에 나름대로 생활의 비결이 있으셨습니다.


리모컨으로 현관문을 열고

모든 기기는 전동 시스템이었습니다

선풍기, 히터도 원하면 켜고 끌 수 있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의 위험들


그런데 만약:


히터가 넘어지면?

히터가 근처에 있는 종이를 태워 화재가 발생하면?

할머니의 유일한 소통창구인 휴대전화가 고장 나면?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없는 시간 아픈 상황이라도 발생하면 병원도 못 가실 텐데 하는 생각에 걱정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에 뭐 도와준다는 건 많은데, 다 거짓부렁이야"


어느 날 할머니는 잔뜩 화가 나서 복지관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를 찾는 전화였습니다.

조용히 할머니 옆에 앉았습니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뭐 도와준다는 건 많은데, 다 거짓부렁이야." "나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 "너희가 날 뭘 도와줄 수 있는데! 내 마음을 알긴 알아?"

날 선 할머니의 말들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묵묵히 할머니의 말을 들었습니다.


진심을 말씀하시다


한참을 화가 나셔서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조금 안정되자 그제야 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휴대전화가 고장이 났었어. 어디에도 연락할 수 없어서 불안하고 무서워"

"불이 나면 나는 그냥 죽게 될 것 같아"

"맛있는 음식을 좀 먹고 싶어, 그런데 요양보호사가 집에 가면 뭘 먹을 수가 없어"

"깨끗이 씻어보고 싶어, 머리도 깨끗하게 씻고 예쁘게 다듬고 싶어"

"혹시나 핸드폰이 고장 나거나, 불이 나거나 할 때 대비해서 나를 보호해 줄 장치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무거워진 발걸음


할머니의 말을 두어 시간을 듣고 복지관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과연 할머니를 위한 일은 무엇일까? 나는 할머니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것은:


휴대전화가 고장 나서 어디에도 연락할 수 없는 고립상태가 되었다는 것

저녁에 배가 고파도 무엇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내가 목욕을 해드려야겠다!"


우선 휴대전화부터 잘 작동하게 해드린 후 책상에 앉아 고민했습니다.

"아, 내가 목욕을 해드려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장 씻겨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체 장애가 심한 할머니를 혼자 씻기는 것이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방문목욕 서비스를 받게 되면 할머니의 요양보호사 시간이 줄어들게 됩니다.


요양센터장님과의 협력


그래서 요양센터장님과 연락하여 같이 협력해 보기로 했습니다.

할머니의 욕구를 잘 전달해 드리고 할머니를 안전한 침대에서 잘 닦아 드리게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예뻐지고 싶습니다. 집에만 있더라도 머리를 삭발로 자르고 싶어 하진 않습니다.

그래서 복지관 방문 미용 서비스를 연계해서 어르신의 머리를 단발로 잘라드렸습니다.


119 응급안전벨의 마법


제일 중요한 것은 응급 벨 서비스였습니다.

이쯤 되면 할머니는 가정 내 보호가 안 되지 않을까? 시설로 가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종사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며,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보건복지부로부터 자원을 찾아 내려오면서 어르신께 독거노인 응급 벨을 설치해 드렸습니다.

리모컨에 119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면 바로 119에 연결되고 안부 확인을 하게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 고마워"


할머니는 리모컨을 손이 닿는 곳 침대 옆에 꼭 붙여두었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신경이 날카로웠는데, 저게 있으니까, 마음이 편안해 고마워"

"한번은 내가 벨을 잘못 누른 적이 있었는데, 119 구급대나, 여러 기관에서 괜찮냐고 안부 전화가 오더라고, 그래서 참 많이 고마웠고 눈물이 나더라"


저녁을 위한 배려


그리고 저녁(요양보호사 선생님이 퇴근한 후)에는 할머니 침대 옆에 카트를 놓아, 물, 드실 음식, 뉴케어 등을 지원해서 놓아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독거노인 안전 서비스를 설치해 드린 후 매일 밤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더 일찍 해 드릴 걸 그러면 하루라도 마음 편히 주무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년 후, 따뜻한 안부


제가 사례관리팀에서 서비스팀으로 로테이션이 된 1년 후 할머니는 종종 복지관으로 연락하셨습니다.

"감기는 괜찮냐?" "요즘 힘든 일은 없냐?" "아이는 아프지 않냐?" "좋은 일 한다고 사람 돌아가신 모습 많이 보면 너 힘들다."


우리 할머니처럼 그렇게 전화가 왔습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조금 있어.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업무로 지친 하루에 할머니의 전화 한 통이면 힘이 나고 위로받았습니다.


119 응급벨이 울린 날


몇 년이 지난 후 독거노인 안전 서비스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께서 119 응급 벨을 누르셨고 이후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후송되셨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가장 필요한 순간, 두려웠던 그 순간, 미리 설치해 두었던 119 안전벨을 누르셨습니다.

이후 할머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응급실을 통해 중환자실로 가셨고 이후 요양병원에서 사망하셨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남긴 것들


가끔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고독사를 마주할 시점인 현관문 앞에 서면 **"좋은 일 한다고 사람 돌아가신 모습 많이 보면 너 힘들다."**라고 말씀하셨던 할머니의 말을 항상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20년 침상생활의 의미


"꼼짝도 못하는 20년"

이 표현 속에는:


신체적 제약에 대한 절망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은 의지

20년간 쌓아온 생활의 지혜

존엄을 지키려는 노력


진짜 필요했던 것들


할머니가 진짜 필요했던 것들:


안전에 대한 보장 (119 응급벨)

기본적인 욕구 충족 (목욕, 미용, 식사)

심리적 안정감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믿음)

존재에 대한 인정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



시설이 아닌 집에서 사는 이유


"그것은 최후의 수단이며,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왜 시설이 아닌 집에서 계셔야 했을까요?



익숙한 환경에서의 안정감

자기 결정권의 유지

개인적 공간과 프라이버시

20년간 쌓아온 생활 방식



작은 것들이 만든 큰 변화


119 응급벨: "마음이 편안해 고마워"

방문 미용: "여자는 예뻐지고 싶어요"

침대 옆 카트: "저녁에 배가 고파도..."

요양센터와의 협력: "깨끗이 씻고 싶어요"


지체장애인의 특별한 요구


물리적 환경:


전동 시스템 (문, 가전제품)

손 닿는 거리의 생필품 배치

안전장치 (화재, 응급상황)


사회적 지지:


24시간 연락 가능한 체계

정기적인 방문과 점검

응급상황 대응 시스템


심리적 지원:


존재 가치에 대한 인정

자기 결정권 존중

미래에 대한 안정감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할머니가 건네주신 이 말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20년간 침대에 누워계셨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여전히 밝으셨고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마음은 따뜻하셨고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아셨고

누군가를 격려할 줄도 아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미리 설치해 두었던 119 안전벨을 누르셨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셨고

준비된 시스템을 활용하셨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존엄한 삶을 살다 가신 것입니다.



꼼짝 못해도 살아있는 삶


**"꼼짝도 못하는 20년"**이었지만, 할머니의 삶은:



체념이 아닌 적응이었고

포기가 아닌 지혜였고

절망이 아닌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삶을 함께할 수 있어서,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안전하게 지켜드릴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다음 화에서는 고시원 바닥에 누워계셨던 말기암 환자분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청진기를 든 사회복지사》는 복지 현장에서 건강과 돌봄을 연결하며

사회복지사로서 마주한 경험을 기록한 실천 에세이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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