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나는 그저, 오래 알던 이웃을 잃었다

by 김정은

"우리 다음 주에 병원 같이 가요."

그분이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주는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그 집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고독사라는 단어는 이제 내겐 너무 익숙하다.

너무 자주, 너무 가까이에서 마주했다.

나는 간호사였고, 지금은 복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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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는 환자의 죽음을 매일 보았다.

내과병동, 암병동, 응급실. 죽음은 매뉴얼처럼 준비되어 있었고,

가족도, 의료진도 함께하는 죽음이었다.


그런데 복지 현장에서 마주한 죽음은 달랐다.

너무 고요했고, 너무 외로웠고, 너무 늦게 발견되었다.

나는 그걸 고독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고독사들은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도 잠을 잘 수 없었고,

그 어르신의 얼굴이,

내가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점점 무뎌졌다.


고독사 현장을 다녀온 다음 날에도

출근을 해야 했고, 회의를 해야 했고, 다른 어르신의 가정방문을 가야 했다.

슬퍼할 틈이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죽음을 막을 수 없어."

"어느 정도 선까지만 하자."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할 수 있어."

그런데 그러면서도 매번 문 앞에 서면 심장이 뛴다.


"혹시 또..." "오늘도 아무 대답이 없으면..."

그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고독사는 현장이 아니다. 마음에 남는 상처다.

나도 한 사람이고, 오래 관계를 맺어온 주민이었고,

그분은 그냥 대상자가 아니라 오래 알던 이웃이었다.


나는 이웃을 잃었다.

단지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신 게 아니라 나의 일상 일부가 사라진 것이었다.

복지관의 많은 동료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럴 수도 있지. 우리가 신도 아니잖아."

"그분들은 그래도 너 덕분에 행복했을 거야."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고개를 떨구고 나면 속으로는 항상 이렇게 묻고 있다.


"그 죽음을 정말 막을 수 없었을까?"

현장에서 마주한 고독사는 늘

'조금만 더'라는 후회를 남겼다.

조금만 더 민감했다면, 조금만 더 의심했더라면, 조금만 더 연락을 했더라면... 그

'조금'이 한 사람의 생을 이어주는 실이었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고독사는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쓰며 이 죽음을 '고독사'로 분류한다.

고위험군, 단독가구, 무연고, 돌봄공백.

그 모든 항목에 체크 표시를 남긴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분은 어르신이었다.

내가 커피를 건네받던 분, 나를 기다려주던 분, 다음주 병원에 함께 가자고 했던 분이었다.

돌봄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다.

그리고 죽음을 잊지 않는 일이다.


나는 복지사이기 전에, 그저 그분과 시간을 함께 나눈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내 마음속에서 살아 있다면,

그 죽음은 단지 '고독사'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을 숫자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사람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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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메시지 999》는
고독사와 가정 내 임종을 둘러싼
작은 신호들과 놓쳐버린 이야기들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간호사이자 사회복지사로 15년을 살아오며,
삶의 마지막 곁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 속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서 함께 나누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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