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8화. 복지를 배우다

by 김정은

간호사가 사회복지 대학원에 가다니

복지관에서 3년째 일하면서, 나는 점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간호사로서의 지식은 있지만, 어르신들이 마주한 사회적 문제들 앞에서는 여전히 막막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약을 못 사시는 분, 가족과 연락이 끊어진 분, 우울증으로 집에만 계시는 분... 이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그러던 어느 날, 차의과대학교 RN-BSN 수업에서 만난 정신건강복지센터 간호사 교수님과의 메일이 내 인생을 바꿨다.


멘토의 조언

"저라면 사회복지 대학원에 갈 것 같아요. 요즘은 하나의 직업으로는 빛을 발할 수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이 많을수록, 또 그것이 협업될 때, 그런 사람이 필요한 시대가 올 거예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 간호와 사회복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야.'

나는 기존에 노인전문간호사 과정을 진학하려던 계획을 바꿔, 사회복지대학원 노인보건복지과정을 수료하기로 결정했다.


입시 준비의 현실

하지만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간호학과 출신이 사회복지학을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첫 번째 충격: 완전히 다른 언어

간호학에서 쓰던 용어와 사회복지학에서 쓰는 용어가 완전히 달랐다.

간호학: 간호과정, 간호진단, 간호중재, 간호평가

사회복지학: 사회복지실천, 사례관리, 사회복지정책, 지역사회조직

같은 '사람을 돕는다'는 목표지만, 접근 방식과 사용하는 언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두 번째 충격: 전혀 다른 관점

사회복지개론 책을 펼치자마자 나는 혼란에 빠졌다.

"사회복지는 사회구성원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적 노력이다."

간호학에서는 '개별 환자의 건강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면, 사회복지학에서는 '사회 전체의 복지 향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면접에서 마주한 질문

2016년 3월, ○○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면접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질문이 있었다.

"왜 간호사가 사회복지를 공부하려고 하느냐?"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복지관에서 일하면서 건강 문제가 단순히 의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심리적 요인과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간호사의 의료적 전문성에 사회복지적 관점이 더해진다면, 더 통합적이고 효과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합격했다.


첫 수업에서의 충격

첫 수업은 '사회복지실천론'이었다. 교수님이 물었다.

"사회복지실천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다른 학생들이 줄줄이 답변했다.

"인간의 존엄성, 자기결정권, 사회정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 나에게 '가치'라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었다. 간호사로서는 '환자의 안전'이나 '정확한 간호'가 중요했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강점 관점'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강점 관점'이었다.

간호사로서의 나: 항상 '문제 중심'으로 접근했다. 환자의 문제를 찾아내고, 진단하고,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었다.

사회복지학에서의 접근: '강점 관점'으로 접근했다. 문제보다는 클라이언트가 가진 강점과 자원에 주목하고, 그것을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현장과 이론의 연결

대학원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내가 현장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이론으로 설명되는 순간들이었다.

사례관리론 수업에서

교수님이 "사례관리의 핵심은 통합적 서비스 제공"이라고 설명하실 때, 나는 복지관에서 경험했던 박순자 할머니 사례가 떠올랐다.

할머니의 당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서비스뿐만 아니라 경제적 지원, 사회적 지지, 교육 서비스가 함께 제공되어야 했던 것이 바로 사례관리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역사회복지론 수업에서

'지역사회 조직화'에 대해 배우면서,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주민조직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단순히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돕는 것이 진짜 복지였다.



돌아온 현장에서의 변화

사회복지 대학원을 졸업하고 복지관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업무 접근 방식의 변화

이전에는 의료적 문제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그 문제의 사회적 배경까지 함께 고려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당뇨 어르신을 만날 때:

이전: 혈당 수치, 약물 복용, 식이요법에만 집중

이후: 경제적 상황, 가족 지지, 사회적 고립, 건강 정보 접근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


동료들과의 관계 변화

사회복지사들과의 소통이 훨씬 원활해졌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은씨, 이제 정말 우리팀 사람 같아요!"

팀장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새로운 정체성의 발견

나는 이제 '간호사'도 '사회복지사'도 아닌, **'간호복지사'**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갖고 있던 의료적 지식과 기술에 사회복지사로서의 시각과 가치가 더해지니, 클라이언트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르신이 약을 안 드신다고 했을 때:

간호사 시각: 복약 지도와 부작용 모니터링

사회복지사 시각: 복약을 방해하는 사회적 요인 파악

통합된 시각: 의료적 필요성과 사회적 맥락을 함께 고려한 맞춤형 접근


실제 변화된 사례관리

통합적 접근의 실제 사례: 이병수 할아버지

79세, 당뇨+고혈압, 독거, 최근 혈당 조절 불량

기존 접근방식:

혈당 측정 → 높음 → 복약 교육 → 병원 연계


새로운 통합적 접근:

의료적 사정: 혈당 조절 불량 원인 파악

사회적 사정: 경제 상황, 가족 관계, 사회적 지지

환경적 사정: 주거 환경, 지역 자원 접근성

심리적 사정: 질병에 대한 인식, 동기 수준


발견된 문제:

복잡한 복약 지시로 인한 혼란

경제적 어려움으로 정기적 병원 방문 어려움

가족과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당뇨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두려움


통합적 개입:

의료: 간단한 복약 방법 교육, 혈당 자가 모니터링

경제: 의료비 지원 서비스 연계

가족: 가족 교육과 관계 개선 상담

교육: 올바른 당뇨 정보 제공과 동기 강화

결과: 3개월 후 혈당 수치 개선, 가족 관계 회복, 자가 관리 능력 향상


� 다음 화 예고 간호복지사가 된 김정은,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독사 현장에서 마주한 충격적인 경험들과 그로 인한 심리적 소진. 무엇이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했을까?


여러분은 새로운 전문 분야를 공부하거나 배울 때 어떤 어려움을 겪으셨나요? 그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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