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7화. 두 개의 시선

by 김정은

간호사의 눈, 복지사의 마음

현장에 나가 어르신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두 개의 감각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나는 '간호사의 눈', 또 하나는 '복지사의 마음'이다.

간호사의 눈으로는 발을 먼저 본다. 부종은 있는지, 상처는 없는지, 보행은 안전한지. 손의 떨림이나 시선의 초점, 약 봉투에 적힌 복약 시간까지 빠르게 스캔한다.

하지만 문득, 어르신의 식탁 위에 놓인 반쯤 비워진 국그릇을 보면, '복지사의 마음'이 움직인다.

"혼자 드셨어요? 요즘 식사는 잘 하고 계세요?"

김덕수 할아버지의 발견

지난주 방문간호를 갔던 김덕수 할아버지(78세) 댁에서였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계시는 분으로, 매달 한 번씩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가고 있었다.

간호사의 눈으로 본 할아버지:

혈압 180/100mmHg (조절 불량)

발가락 사이 피부 균열과 색깔 변화

손떨림 증상 (파킨슨 의심)

약봉투 3개가 개봉되지 않은 채 방치

"할아버지, 약을 안 드시고 계세요?"

"먹어야 하는 걸 알지만... 너무 많아서 헷갈려."

복지사의 마음으로 본 할아버지:

냉장고 속 며칠 된 반찬들

쌓여있는 택배 상자들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계신 모습

말씀하실 때 스며드는 외로움


"요즘 가족들과는 어떻게 지내세요?"

"아들이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올까 말까 해."

그때 깨달았다. 할아버지의 혈압이 높은 건 단순히 약을 안 드셔서가 아니었다. 복잡한 복약 지시를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계셨고, 가족의 관심과 지지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두 시선이 만나는 순간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약 정리부터 시작했다.

간호사로서: 약물별 복용법을 설명하고, 하루 분량씩 나누어 담을 수 있는 약통을 준비했다. 혈압약은 아침 식후, 당뇨약은 식사 30분 전이라는 복잡한 지시를 색깔별로 구분해서 표시했다.


사회복지사로서: 할아버지의 아들에게 연락을 드려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복지관의 안부 확인 서비스와 주 2회 식사 배달 서비스를 신청했다.

한 달 후 다시 방문했을 때, 할아버지의 혈압은 140/85mmHg로 많이 개선되어 있었다. 더 중요한 건 표정이 밝아지셨다는 것이었다.

"복지관에서 오시는 분들 덕분에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약도 까먹지 않게 됐어요."


기록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예전 병원에서는 이렇게 기록했을 것이다:

S: 복약 불순응 호소 O: BP 180/100mmHg, 손떨림(+), 발색깔 변화 A: 고혈압, 당뇨 조절 불량 P: 복약 교육, 정기 모니터링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기록한다:


김덕수 어르신은 혼자 거주하시며 복잡한 복약 지시로 인해 치료 순응도가 떨어진 상태입니다. 가족 지지체계가 부족하여 건강관리에 대한 동기가 낮으나, 외부 지원에 대한 수용성은 높습니다. 단기 목표: 혈압 140/90 이하 유지 장기 목표: 안전한 독거생활 지속 서비스 계획: - 의료: 복약 교육, 정기 모니터링 - 복지: 안부 확인, 식사 지원 - 가족: 정기적 소통 체계 구축

같은 사람을 보는데도 기록이 이렇게 달라진다.


어느 회의에서 생긴 일

어느 날 사례회의에서 간호적 의견을 냈더니, 한 사회복지사가 말했다.

"그건 의료 쪽 이야기고요. 우리는 생활을 보는 거잖아요."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반만 맞았다.

왜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나누지 못할까?

나는 간호사였고, 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사와 일했다. 그중 누구도 틀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자기 시야'에만 갇혀 있었다.

어르신의 낙상을 두고, 의사는 약물 부작용을, 간호사는 보행 불안정성을, 사회복지사는 방바닥 구조와 경제 여건을 말했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이 모든 게 동시에 맞을 수 있다는 것을. 하나의 시야로는, 결코 한 사람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것을.


박영희 할머니의 우울증

또 다른 사례가 있었다. 박영희 할머니(75세)는 최근 들어 복지관 프로그램 참여를 중단하고, 집에서만 지내신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첫 번째 방문 - 간호사의 관점:

체중 5kg 감소

식욕 부진, 수면 장애

만성 피로감 호소

"우울증 아닐까요?" → 정신건강의학과 연계 권유

할머니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내가 미친 것도 아닌데 왜 정신과에 가?"


두 번째 방문 - 복지사의 마음:

이번엔 다르게 접근해봤다. 병이나 치료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그냥 할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뭐 별일 있겠어. 그냥 그렇게 지내지."

"예전에는 복지관 프로그램도 잘 나오셨는데..."

"아, 그거? 이제 나이도 들고, 귀찮아서."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진짜 이유가 나왔다. 두 달 전 절친한 친구가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50년을 함께한 친구였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 친구랑 복지관도 같이 다녔는데... 이제 혼자 가려니까 의미가 없어."


통합적 접근:

할머니의 우울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상실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약물 치료보다는 애도 과정을 도와드리는 게 먼저였다.

의료적 지원: 심한 불면이나 식욕부진에 대한 모니터링

심리적 지원: 상실감을 나눌 수 있는 개별 상담

사회적 지원: 새로운 관계 형성 기회 제공

의미적 지원: 돌아가신 친구를 기억하는 방법 함께 모색

3개월 후, 할머니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며 다시 복지관에 나오기 시작하셨다.


사례관리 기록의 진화

8년간 일하면서 내 기록 방식은 계속 진화했다.

초기 (간호사 중심):

대상자는 고혈압, 당뇨로 인해 복약 관리가 필요함. 혈압 모니터링과 복약 교육을 통해 관리하고자 함.

중기 (복지 언어 습득):

대상자는 독거 생활하시며 만성질환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계심. 사회적 지지체계 구축을 통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함.

현재 (통합적 관점):

대상자는 75세 여성으로 절친한 친구의 사망 이후 우울감과 사회적 위축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나, 현재는 상실에 대한 정서적 지지가 우선순위입니다. 강점: 인지기능 양호, 자녀와의 관계 양호, 종교활동 지속 욕구: 외로움 해소, 의미 있는 관계 형성 목표: - 단기: 애도 과정 지지, 기본적 건강 유지 - 장기: 사회참여 회복, 새로운 관계 형성 서비스 계획: - 개별 상담을 통한 감정 지지 - 점진적 사회활동 참여 독려 - 만성질환 모니터링 지속 - 가족과의 소통 강화



협업이 만들어낸 변화

어느 날 팀 회의에서 김선생님(사회복지사)이 말했다.

"정은씨와 함께 사례관리하면서 많이 배워요. 어르신들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저도요. 선생님 덕분에 어르신이 처한 사회적 상황까지 고려하게 됐어요."

서로 다른 전문성이 만나니 1+1이 3이 되는 경험을 했다.

사회복지사가 간호사에게서 배운 것: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더 세심하게 관찰하기

응급상황 판단과 대처 능력

의료진과의 효과적인 소통 방법


간호사가 사회복지사에게서 배운 것:

어르신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의 중요성

강점 관점으로 사람 바라보기

이용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나만의 통합적 시야

지금 나는 어르신을 만날 때 이렇게 본다:

몸으로 보기: 건강 상태, 안전, 기능 마음으로 보기: 감정, 관계, 의미 환경으로 보기: 집, 지역사회, 제도 시간으로 보기: 과거, 현재, 미래

어느 하나만으로는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관점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전인적 돌봄'이 가능해진다.


두 시선이 하나가 되는 순간

요즘 나는 어르신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한다:

"이분의 혈압이 높은 이유는 약 때문일까, 스트레스 때문일까, 아니면 외로움 때문일까?"

"이분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몸이 아파서일까, 마음이 아파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간호사의 눈과 복지사의 마음이 하나가 될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진짜 필요를 발견할 수 있다.


� 다음 화 예고 간호사의 한계와 복지사의 꿈, 무엇이 김정은을 동시에 추구하는 험난한 여정의 이야기. 둘 합사를 갖추려는 것의 의미를 들려드릴게요.


어떤분에게든 말씀나 일상에서 전문적 관찰력이나 직업적 감각으로 누군가를 도와 경험이 있 나요? 그때의 기쁨은 어땠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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