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9화. 치아가 없어서

by 김정은

복지관 로비에서 만난 절망

어느 추운 겨울날, 중년의 남성이 복지관을 찾아왔다. 50대 전후로 보이는 그는 말끔하게 옷을 입고 있었지만, 무척 쑥스러워하며 어려워하는 모습이었다.

복지관에 처음 오신 것 같았다. 직원에게 도움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듯했으나, 쭈뼛쭈뼛 말하는 아저씨의 말을 신입 사회복지사가 이해를 못 했는지 응대가 잘 되지 않았다.

"상담을 받고 싶다. 도움을 받고 싶다"라는 얘기만 들려서 내가 로비로 나가 만나봤다. 조용히 상담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해서 어떤 경우로 오게 되었는지를 조용히 여쭤봤다.

아저씨는 잠시 마스크를 내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하악 소구치 1개를 제외하고는 치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치아가 없어서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요."


59세 남성의 사연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마음이 아팠다. 잦은 알코올 섭취와 가족과의 갈등으로 우울감이 심해졌고, 건강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현재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떻게 식사를 하셨어요?"

"맑은 미음 위주로 먹었어요. 체중도 많이 빠지고 기력도 떨어져서... 이제는 틀니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집 근처 치과에 방문하여 치료 계획을 들어보니, 상하악 틀니 제작비는 총 260만 원이 든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아저씨는 제작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복지관에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이었다.

간호사로서 본 아저씨:

영양 부족으로 인한 근감소증

체중 감소와 전신 쇠약

구강 위생 상태 불량

씹기 곤란으로 인한 소화 기능 저하


사회복지사로서 본 아저씨: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의료 접근성 문제

알코올 의존과 가족 갈등

사회적 위축과 자존감 저하

기본적 생활 욕구(식사) 충족 불가


해결책을 찾아서

아저씨를 돕기 위해 국가보철지원사업 제도를 알아보니 65세 이상의 어르신에게만 해당되어 59세인 아저씨가 받을 수 있는 국가 지원이 없었다.

그렇다고 6년을 기다려 65세가 될 때까지 치아가 없는 채로 생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260만 원이라는 큰돈을 어떻게 마련할지 아저씨와 나는 일주일 동안 고민했다.

그러던 중 우리 복지관에서 20년 넘게 치과 의료 봉사를 하셨던 ○○대학교 ○○○ 치과원장님이 생각났다.

개인 치과를 운영 중이신 선생님은 우리 복지관 이용자 중 치아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돕고 싶어 하셨기 때문에 도움을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흔쾌히 틀니를 무료로 지원해 주시기로 했다.


6개월간의 변화 과정

국가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아저씨에게 민간 지원으로 틀니를 무료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개월차: 정밀 검사와 치료 계획 수립

잇몸 상태 점검과 염증 치료

틀니 제작을 위한 본뜨기

금주 상담과 동기 강화

3개월차: 임시 틀니 착용과 적응

부분 틀니로 서서히 적응

부드러운 음식부터 시작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도와주시는데, 제가 계속 술을 마실 수는 없잖아요."


아저씨는 치료 과정 동안 술을 끊으셨다. 그리고 이것이 더 큰 변화의 시작이었다.

6개월차: 완성된 틀니와 새로운 삶

상하악 틀니 완성과 최종 조정

일반 식사 가능

가족 관계 개선 의지 표명


금주로 가족과 갈등 빈도가 줄었으며, 가족들과 건강한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자 복지관 가족 상담 프로그램을 받기로 했다.


단순한 틀니 지원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틀니 지원 사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신체적 변화 정상적인 식사 가능 체중 증가와 영양 상태 개선 전반적인 건강 상태 향상

심리적 변화 자존감 회복 사회적 관계에 대한 자신감 미래에 대한 희망

사회적 변화 금주 성공 가족 관계 개선 노력 사회복지서비스 적극 이용

행동적 변화 정기적인 구강 관리 건강한 생활습관 형성 다른 어르신들에게 경험 나누기


6개월 후의 만남

틀니를 끼고 오신 아저씨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 이제 고기도 먹을 수 있어요! 어제 아들이랑 삼겹살도 먹었어요."

환하게 웃으시는 아저씨의 모습에서 나는 우리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단순히 치아를 해결해드린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것이었다.

아저씨는 이후 가족 사례관리 대상으로 전환되어 가족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만난 현실

아저씨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복지 제도의 한계도 보았다.

연령 기준의 경직성:

65세 미만은 국가 보철 지원 대상 제외

실제 필요와 제도적 지원 사이의 괴리


복지와 의료의 분절:

의료급여로는 치료비만 지원

의료기구(틀니)는 별도 본인부담

통합적 지원 체계 부족


민간 자원의 중요성:

공적 지원의 한계를 민간이 보완

하지만 민간 자원의 지속성과 형평성 문제


나의 성장

이런 사례들을 경험하면서 나는 단순한 간호사도, 단순한 사회복지사도 아닌, 두 영역을 넘나드는 전문가로 성장하고 있었다.

의료적 지식 + 복지적 시각 = 통합적 해결

치아 문제를 의료적으로만 접근했다면 "치과에 가세요"로 끝났을 것이다. 복지적으로만 접근했다면 경제적 지원에만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두 관점을 통합했기 때문에:

의료적 필요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며

심리사회적 변화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


� 다음 화 예고 따뜻한 성공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역사회에서 홀로 임종을 맞이하는 어르신들. 고우신 할머니와 함께한 마지막 한 달의 기록과 지역사회 통합돌봄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여러분에게도 작은 도움이 큰 변화를 만든 경험이 있나요? 또는 그런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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