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6화. 할머니를 살리다

by 김정은

방문간호라는 새로운 세계

복지서비스팀에서 간호사로 보건의료사업 1개를 운영할 때는 사업량이 지금에 비하면 매우 적었다. 그래서 매주 월요일 13:30~15:00시에는 주 4회 어르신 가정에 방문했다.

가정방문을 가면 의사의 오더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저 건강 상태를 살피고 안부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복지관에서 무료급식을 이용하는 어르신 중 식사 배달을 받으시는 어르신 100명 정도의 명단을 추려 가정방문하였고, 어르신 댁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마음이 참 따뜻해졌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는 것처럼 어르신들은 늘 환하게 맞이해 주셨고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하지만 그때부터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간호사로서 나는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 의료법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아마도 병원에서 의사의 명령을 받아 직접 간호를 수행하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나는 방문간호랍시고 어르신 댁에 가서 아무것도 하고 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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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옥 할머니와의 만남

내가 방문간호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이순옥 할머니를 만나면서부터였다.

할머니는 80세,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시고 독거로 생활하고 계셨다. 복지관에서 주 2회 식사 배달을 받고 계셨는데, 배달 봉사자가 "요즘 할머니가 말씀이 줄어든 것 같다"고 보고해서 방문하게 되었다.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복지관에서 나왔어요." "아, 그래요... 들어오세요."

평소보다 목소리에 기운이 없으셨다. 혈압을 측정해드렸다. 160/90mmHg. 평소보다 높았다.

"할머니, 혈압이 좀 높으세요. 약은 잘 드시고 계세요?" "약이 떨어져 가는데... 병원 가기가 힘들어서..."

그때 나는 할머니의 표정을 자세히 보았다. 뭔가 평소와 달랐다. 얼굴이 약간 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고, 말씀하실 때도 약간 어눌하신 것 같았다.


전문적 관찰력이 발휘된 순간

"할머니, 혹시 어지러우시거나 머리 아프신 적 있으세요?" "응... 어제부터 좀 어지럽긴 해..." "한쪽 팔이나 다리에 힘 빠지는 느낌은 없으세요?"

할머니가 팔을 들어보시라고 했더니 오른쪽 팔이 왼쪽보다 덜 올라갔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은 뇌졸중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라면 즉시 응급처치팀에 연락하고 신경과 의사에게 보고했을 상황이었다.

� 뇌졸중 전조증상 체크리스트

F.A.S.T. 테스트

F(Face): 얼굴 마비 - 웃을 때 한쪽이 처짐

A(Arms): 팔 마비 - 양팔을 들었을 때 한쪽이 떨어짐

S(Speech): 언어 장애 - 말이 어눌하거나 이상함

T(Time): 시간 - 증상 발견 즉시 119 신고


기타 주요 증상

갑작스러운 심한 두통

어지러움과 균형감각 상실

시야 장애

의식 저하


"할머니, 지금 당장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에이, 괜찮을 거야..." "아니에요. 정말 중요한 거예요. 제가 119 불러드릴게요."


생명을 구한 전문적 판단

할머니를 설득해서 응급실로 모시고 갔다. 검사 결과 경미한 뇌졸중이었다. 다행히 빨리 발견해서 큰 후유증 없이 치료받을 수 있었다.

담당 의사가 말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누가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셨어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방문간호가 단순히 안부 확인이 아니라는 것을. 전문적인 관찰과 판단이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방문간호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순옥 할머니 사건 이후, 나는 방문간기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꾸었다. 단순한 안부 인사가 아니라 체계적인 건강 모니터링과 위험 요소 사정의 시간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 방문간호 체크리스트

신체적 상태

혈압, 맥박, 체온 (가능한 범위에서)

전반적인 안색과 표정

보행 상태와 균형감각

언어 명확성과 인지 상태

약물 복용 상태 확인


환경적 안전

집 안 정리 상태 (낙상 위험 요소)

음식물 보관 상태

화재 위험 요소

위생 상태


사회적 상태

최근 가족이나 이웃과의 연락

외출 빈도와 사회적 활동

우울감이나 고립감 정도


만성질환 관리의 새로운 접근

방문간호를 통해 나는 지역사회에서의 만성질환 관리가 병원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병원에서의 당뇨 관리

혈당 수치 확인

약물 조정

합병증 검사

식이 교육


지역사회에서의 당뇨 관리

실제 생활 속에서의 식습관 관찰

경제적 상황에 맞는 식단 조정

약물 구입과 복용의 실질적 어려움 파악

가족의 지지와 이해 정도 확인

합병증 예방을 위한 생활환경 개선


정수빈 할아버지의 당뇨 관리 사례

정수빈 할아버지(78세)는 당뇨를 앓은 지 15년이 된 분이었다. 매달 병원에 다니시고 약도 잘 드시는데 혈당 조절이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첫 방문에서 할아버지의 혈당측정기를 확인해보니 측정 기록이 한 달에 서너 번밖에 없었다.

"할아버지, 혈당 측정을 자주 안 하시네요?" "측정 바늘이 아프더라고... 그리고 어차피 높게 나오니까..."

냉장고를 열어보니 인슐린이 얼어있었다. 인슐린은 얼리면 안 된다는 것을 몰라서 냉동실에 보관하고 계셨던 것이다.

식사 시간에 맞춰 다시 방문해보니 할아버지는 흰밥 한 공기에 김치만 드시고 계셨다.

"할아버지, 반찬이 없으세요?" "반찬 해 먹기가 귀찮아서... 그냥 김치로 때우지 뭐."

그제야 알았다. 할아버지의 혈당 조절이 안 되는 이유를:

올바르지 않은 인슐린 보관

불규칙한 혈당 측정

편중된 식사 (탄수화물 과다)

당뇨 관리에 대한 잘못된 지식


병원에서는 이런 실생활 문제들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방문간호를 통해서는 이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계획을 세웠다:

인슐린 올바른 보관법 교육

혈당 측정 시간 정하기 (매일 아침, 점심 전)

간단한 반찬 만들기 (계란찜, 두부조림 등)

복지관 식사 배달 서비스 신청


3개월 후 할아버지의 혈당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건강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가정방문에서 발견한 또 다른 현실

방문간호를 하면서 나는 어르신들의 삶에 숨겨진 많은 문제들을 발견했다.

경제적 어려움

약값 때문에 약을 반으로 쪼개서 드시는 분

전기세 아끼려고 여름에도 선풍기를 안 트시는 분

병원비 부담 때문에 아픈데도 참고 지내시는 분


사회적 고립

일주일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내시는 분

가족과 연락이 끊어져서 혼자 아파하시는 분

치매 초기라 말이 안 통해서 더 외로워하시는 분


정보 부족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모르시는 분

잘못된 건강 정보를 믿고 계시는 분

응급상황 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시는 분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의료적 접근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었다. 사회복지적 개입이 함께 필요한 영역들이었다.


방문간호의 진정한 의미

이순옥 할머니를 통해 깨달은 것은, 방문간호는 단순히 집에 가서 혈압을 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문적 관찰력으로 위험 신호를 조기 발견하는 것

생활 속 건강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

의료와 복지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

한 사람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생명을 구할 수도 있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복지관에서의 첫 1년은 혼란스러웠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간호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은 의미의 간호사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 다음 회 예고 간호사의 눈과 복지사의 마음, 두 개의 감각이 동시에 작동하는 현장의 이야기. 통합적 시야를 갖는다는 것의 의미를 들려드릴게요.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일상에서 전문적 관찰력이나 직업적 감각으로 누군가를 도운 경험이 있나요? 그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이 이야기는 매일 연재됩니다
《나는 이름 없는 일을 합니다》는 병원 밖 삶을 고민하며
간호와 복지 사이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실천자의 기록입니다.


・일상 이야기와 활동 후기는 블로그에 종종 남기고 있어요
https://blog.naver.com/ju8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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