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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Nov 03. 2024

구멍난 나뭇잎

<날마다 새로운 노래>  인생의 터널을 지나며 선물로 받은 시간


안스러워 마라

 

그 틈 사이로

지나가는

풋풋한 바람으로

반짝이는 햇살로

앵두 한 알이 익었다

 

그 구멍 안에

차오르는

하늘 한 웅큼과

빗물 한 줌으로

나비가 기지개를 켰다

 

그 결 따라

흘러가는

사랑의 줄기와

소망의 세월로

아이들의 웃음이 포실해졌다

 

안스러워마라


누군가에게 내어준 흔적

생명이 나뉜 자국

잘 살았다는 증거다


지나는 길에

거들떠보지도 않는 구멍나고 상처난 나뭇잎이 눈 앞에 들어왔습니다.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준 흔적,

누군가에게 생명을 나눠준 자국,

그 빈틈 안으로 바람이.. 햇살이.. 지나갑니다.

그 구멍 안으로 하늘이.. 빗물이.. 담겨집니다. 

그 결을 따라 사랑이, 소망이, 흘러갑니다. 


일찍이 나무에서 떨어졌다고, 구멍이 나고 상처가 났다고 슬퍼하지만 말기로 합니다. 

떨어진 대로. 구겨진 대로, 상처난 대로 제 할 일을 충분히 했기 때문입니다. 


이른 낙엽을 보고 제 모습을 위로 받습니다. 

마흔 나이에 20년은 뒤로 당겨진 신체의 몸을 갖고 살지만, 

열심히 살아왔고 세 아이를 키우고 또 주어진 하루를 충만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하는 모습도 아니고 감당 해야 할 시간은 조금 이르게 느껴지지만 

지금의 모습 그대로로 또 새롭게 반짝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살게 하는 힘..

삶을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다. 

이때의 아름다움이란 한 송이 꽃이 온 힘을 다해 꽃잎을 펼쳤을 때의 그 힘과 같이 

삶의 힘겨움과 어려움에 위축되지 않고 온 존재를 피워낸 이에 대한 존경에 가까운 정서다. 

살아있는 것은 그래서 아름답고 이렇게 피워낸 아름다움은 주변 생명들을 살아가게 한다. 

자신뿐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이웃을, 타인을 돌보게 되는 힘, 나는 이것을 노동이라 칭하고 싶다. 

<질병과 함께 춤을, 다리아, 모르, 박목우, 이혜정, 조한진희 지음. 푸른숲>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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