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DDIQUE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1)

박은주가 박지후로 그리고 지후트리가 되기까지

by Oddique Magazine

Editor's comment

지후트리는 수화언어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내거나 퍼포먼스를 해내는 수화 아티스트이다. 실은 꽤 여러 매체를 통해 그녀가 알려진 터라 그녀가 수화언어로 작업을 하게 된 배경에는 가족의 장애가 있으며, 그것을 풀어내고자 하는 지후트리는 비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금방 찾을 수 있다.


나 또한 비장애인이기에 수화 언어를 아트로 풀어냈다는 사실만으로 장애인들에 대한 공감이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후트리의 작업을 보고 좋다고 생각한 것은 반대로 그러한 선한 배경을 내세운 것이 아닌, 온전히 작업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1차적으로는 지후트리의 작업에 매료되고, 그것을 계기로 해서 2차적으로 상황을 인지하게 된다. 그 상황이란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우리가 같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이것을 두고 단지 '공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충분치 않아 보였다.


특히, 지후트리의 작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작업이 아주 언어적인 기반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수화 언어라는 분명한 뜻과 의미를 지닌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시각적인 이미지로 다가가게 된다. 즉, 지후트리의 작업은 말이지만 동시에 이미지인 셈이기도 하다.


이렇듯 여러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지만, 나 또한 몇몇 인터뷰를 통해 얻은 피상적인 정보들만 알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더 궁금증이 커졌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박지후라는 사람이 지금의 지후트리가 되기까지의 있었던 고민들과 그 과정들을 비교적 소상히 담아내고자 했다.





먼저,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profile_image-.png 출처: 지후트리 인스타그램


지후: 안녕하세요. 저는 청각 장애인, 그러니까 농인분들이 사용하는 수화 언어를 가지고 그림 및 퍼포먼스 기타 등등의 예술을 하고 있는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라고 합니다.

*농인: 제1언어로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사람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요즘도 바쁘게 지내시나요?

지후: 요즘에 갑자기 바빠졌어요. 최근에 몇몇 브랜드들과 일을 했어요. 하나는 룰루레몬에서 직원분들 대상으로 강의를 했고요. 또 삼성전자에서 영상을 찍게 됐어요. 근데 이게 부끄러워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웃음) 왜냐면 영상의 컨셉이 봄이어서 제 평소 모습과 다르게 되게 화사하게 나왔거든요. 이게 잘 못 보겠더라고요. 하지만 작업하게 된 건 너무 좋았어요.


가장 먼저 이름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본명이 박지후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작가명을 지후트리라는 이름으로 짓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155232566_426408588434368_4802468073554874924_n.jpg [수화그림] 아빠, 2015


지후: 사실은 이거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제 이름이 원래는 박지후가 아니라 박은주였어요.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서 좀 차별을 많이 겪었어요.


흔한 예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혼자 저를 기르신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어른들이 '과부 딸이랑 놀지 말아라' 이런 말들을 듣게 된 거죠. 물론 그 사람들은 그러한 환경에서 자랐으니까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어렸을 때는 참 그게 싫었던 것 같아요.


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차별들을 어렸을 때 많이 겪게 되면서, 그리고 제가 성장해 나가면서 그런 것들을 좀 아버지와 함께 보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물론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은 너무 좋았지만, 제가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겪었던 그런 어려움들을 함께 털어내고 새로운 이름으로 출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새로 짓는 이름은 조금 더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이름을 짓고 싶었고, 그 중에서도 '후'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어요. 남동생 이름이 '대훈'인데 좀 비슷하게 들어간 이름으로 짓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작명소에 가서 부탁을 해서 '지후'라는 이름을 받아왔죠.


그러면 지후 뒤에 트리를 붙이시게 된 건 어떤 이유였나요?

지후: 제가 개명하기 전에 친구들한테 먼저 '지후'라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고, 그러고나서 '내가 이제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하고 싶은데 좋은 이름이 없을까'하고 물어봤죠. 그러니까 친구들이 입을 모아서 '나무'라고 하자 얘기해주더라고요.


너는 다른 사람한테 주는 거 좋아하고, 선물하거나 베푸는 걸 좋아하니까 아낌 없이 주는 나무 같으니 '나무'로 하자. 그래서 처음에는 '지후나무'였다가 이제 또 사람이 글로벌하게 생각해야 되잖아요?(웃음) 그래서 지금의 '지후트리'가 됐어요.


지금 얘기해주신 걸 들었을 때, 지후님의 그런 베풀고 남을 돕는 성격은 어디에서 온 걸까요?

996CAA335990523D1B.jpg [수화그림] 돕다, 2017


지후: 저희 가족 중에 외갓집, 그러니까 외할머니가 계신데 제가 외할머니를 진짜 좋아하거든요. 그 외할머니께서 다른 사람한테 베풀고 나눠주는 걸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게 무언가를 바라고 나눠주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이 받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자랐던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도 그런 마음이 안에 자리잡고 있더라고요. 이게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는 걸 느꼈는데, 알고 봤더니 외할머니 영향을 제가 되게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듣다 보니까 지후트리님이 이 길을 선택하신 게 점점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지후: 저의 모든 출발은 항상 가족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제가 활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먼저 방에서 A4 용지를 꺼내와서 마인드맵을 그려봤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가족 그리고 가족이 가진 장애가 키워드로 나오더라고요. 거기서 엄마와 삼촌 그리고 나 이렇게 구도가 그려지더라고요.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충격을 받은 상태에서, 어느 날 스피커 옆에서 음악을 듣다가 갑자기 한 쪽 귀가 안들리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청신경에 무리가 온 거죠. 그걸 저는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엄마가 대답을 너무 안하니까 물어봤더니 그때서야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엄마가 한 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요.


그러면서 제가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우리 가족이 장애가 있다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또 아버지가 없었던 저를 아버지처럼 길러주시던 삼촌이 계세요. 그랬던 삼촌이 연이어서 이번엔 화재 사고로 한 쪽 팔을 소실하신 거예요. 그때 제가 정말 내적으로 정말 많이 무너졌었어요.


그럼 그중에서도 수화를 가지고 작업하시게 된 이유는 뭘까요?

90089512_555796865055507_4882085049652017670_n.jpg [수어 지문자] 손으로 춤추는 언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손에 대해서 컴플렉스가 되게 심했거든요. 제가 손이 되게 크고 안예뻐요. 저희 집안분들이 다 키가 크셔서 저도 키가 컸는데 그래서 손도 컸었던 것 같아요. 근데 어렸을 때는 또래 친구들과 비교하게 되잖아요. '내 친구들은 다 손이 아담하고 가늘고 이쁜데, 내 손은 왜 이렇게 통통하고 크지?' 하고 생각을 했나봐요.


그래서 손이 계속 책상 밑으로 내려가 있거나,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거나 했어요. 그것 때문에 발표도 잘 안하고 그랬어요. 괜히 친구들이 글씨 쓰고 있으면 그 연필 쥔 손을 쳐다 보게 되고, 부러워하고 그랬어요. 손에 제가 컴플렉스가 있었던 거죠. 그게 마인드맵을 그리면서 컴플렉스가 있다는 걸 인지를 하게 됐어요.


이제 여기서 키워드들이 합쳐지게 된 거예요. 한 쪽 청력을 잃은 엄마 그리고 한 쪽 팔을 소실한 삼촌 그리고 나. 여기서 공통된 연결점이 손이였어요. 그래서 손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게 손의 언어인 수화언어로 연결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럼 많고 많은 분야 중에서 아트로 이걸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지후: 중학교 때 반 친구 집에 놀러가서 포토샵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좀 재밌어 했던 것 같아요. 그날로 집에 돌아가서 혼자 열심히 포토샵을 만졌거든요. 그러면서 미술이나 디자인 이런 쪽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됐어요. 친구들한테 매번 그림을 그려서 선물해주고 했었던 게 기억이 나요.


물론 그게 그림을 잘 그려야겠다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친구들한테 내가 무언가 전달해줬을 때 친구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좋아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그러면 그림을 따로 전공을 하신 건 아니잖아요. 거기서 오는 망설임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으셨나요?

지후: 저는 그런 생각을 아예 안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스토리텔링이에요. 이 수화언어를 가지고 만든 스토리가 되게 견고해야 해요. 사실 테크닉 잘하시는 분들은 우리나라에 진짜 너무 많잖아요. 그게 제가 갈 방향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일단 다른 걸 떠나서 내가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자는 주의였어요. '아니면 그때 가서 방법을 바꾸면 되는 거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그림도 새 드로잉 북이 아니라 버려지는 영수증들을 모아서 그림 연습을 했어요. 왜냐면 새 드로잉북을 사면 그 새하얀 종이에 선 하나 잘못 긋는 순간 '아 망했다. 다시' 이러면서 아무것도 그리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상황이 너무 싫었어요.


영수증은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던 부담이 없으니까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계속하게 됐고, '아 이제 그림을 그려도 되겠다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다 이런 식이었어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고, '일단 하기로 했고 마음을 먹었으니까 하자' 이렇게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브런치에 예전에 쓰신 글 중에 '나는 구겨진 삶을 살고 싶다'라고 적어주신 게 기억에 남아요. 혹시 기억하세요? 어떤 의미였을까요?

지후: 네, 그럼요. 기억하죠. 그런 말을 썼던 건 왜냐면 제가 환경적으로 계속 순탄치가 않았잖아요. 일단 아버지의 부재가 저한테는 되게 컸고요. 가족들이 겪게 된 장애도 그렇고요. 물론 학창 시절에 왕따도 당해봤었고요.


근데 제 삶이 순탄치는 않았지만 이런 과정들이 나를 있게 해 준 어떤 하나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그때도 적었던 내용인데 그냥 펼쳐져 있는 종이는 날아가지 않잖아요. 근데 이렇게 구겨서 던지면 잘 날아가거든요.


그래서 '그래 구겨진 게 오히려 더 멀리 날아가고, 굴곡이 많은 게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눠줄 수 있잖아'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는 되게 구겨진 삶을 살아왔지만 그걸 보면서 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다 주고 구겨져 있던 걸 펼칠 수 있게끔 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그럼 계속 구겨진 종이가 되어야겠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달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