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DDIQUE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2)

넓어진 세계와 그 이상의 책임감

by Oddique Magazine

이번에도 의미부터 여쭤볼게요. '수화'와 '수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 이 두 단어의 뜻 차이가 궁금하거든요.

144978366_767961037142283_269003324087489798_n.png <제1회 한국 수어의 날> 축하 이벤트 그림, 2021


지후: 이거는 제가 어딜 가서든 항상 말씀드리는 부분 중에 하나인데 일단 '수화'랑 '수어'는 다른 게 아니에요. '수화언어'를 줄여서 '수어'라고 표현하는데, 2016년 2월 3일에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이 됐고 2016년도 8월에 시행이 됐어요. 이거는 한국의 수화언어가 다른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처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해주자는 법이에요.


이제 그러면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기존의 수화라는 단어보다는 수어라는 표현을 권장하게 된 거죠. 근데 가끔은 농인분들께서 (수화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농인이라고 부르는데) 틀린 표현이라고 얘기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정확히는 수어를 권장하는 것이지 수화가 틀리다고 하는 건 아니예요.


그렇다보니 가끔 제가 붙이는 '수화 아티스트'라는 말을 '수어 아티스트'로 바꿔서 얘기해주시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수화 아티스트로 저를 나타내는 이유에는 손 수(手), 그림 화(畵) 그리고 손 수(手), 말할 화(話)를 써서 '수어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수어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뜻이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럴 때면 제가 왜 수화라는 단어를 붙이게 됐는지를 항상 설명을 드리는 편이에요.


그러면 수어가 하나의 언어인 거 잖아요. 외국어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서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지후: 맞아요. 일단 수어는 나라별로 다 달라요. 당연하겠지만 그 사람들이 생활하는 문화를 기반으로 단어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나라별로 수화언어는 아예 다르고요. 대신 국제수어라고 해서 우리가 영어를 국제 공용어로 쓰는 것처럼 사용되는 수어가 있어요.


저도 실제로 작업할 때 영어 수어를 배워서 사용한 적이 있어요. 그 계기가 재밌는데, 서울에서 알게 된 친구가 있는데 알고 보니 가족 중에 부모님과 형제가 모두 농인이고 본인만 청인인 거예요. 청인은 농인과 반대로 저희 같은 사람들을 부를 때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리고 지금 말한 친구 같은 경우를 '코다'라고 해요.

(*코다: 귀가 들리지 않는 양친이나 후견인에게서 자란 청인)


저도 처음에는 그 친구가 코다인 걸 몰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족들이 수어를 쓴다고 해서 알게 된 거죠. 그런데 재밌는 게 이 친구의 아버지가 한국농아인협회 협회장이시고, 언니랑 오빠분은 한국 국립국어원에서 일하시는, 그러니까 농인 세계에서는 되게 유명하신 분들이더라고요. 그렇게 친구의 가족분들과 알게 되면서 농인들의 세계로 점차 들어가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농인분들과 어떤 교류가 있었던 건 아니었나봐요?

_(1).png 2016년도 전시 당시 모습들


지후: 처음부터 무조건 농인들이랑 친구가 되야겠다 라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을 거니까 조급해하지 말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계속 그리다 보니까 인스타그램을 소통 창구로 사용을 하잖아요. 그렇게 그림을 조금씩 업로드 하다가 2016년도에 전시를 했는데, 그때 처음 제 인스타를 보고 농인분들이 찾아오신 거예요.


그때 농인분들과 처음 만난 거였어요. 그때 그렇게 농인분들과 만나게 되면서 좀 더 대화도 많이 나누게 되고, 농인분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를 농문화라고 하는데, 그런 농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죠.


저는 이런 농인분들에 대해서나 농문화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차근차근 알게 된 거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갑자기 나타났으면 거부감이 들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저는 좀 더 천천히 알고 싶었던 마음이 컸었던 것 같아요.


저로 놓고 생각해보면, 얘기해주신 코다 친구분을 제가 막상 만났다고 해도 저는 잘 몰랐을 것 같아요.

지후: 맞아요. 내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는 거잖아요. 사실 그래서 그렇게 농인분들과 점점 교류를 하고 하다보니까 그전과 달리 저도 시야가 넓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저랑 비슷한 성인들? 저와 비슷한 또래 사람들을 위주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런 사람들이 장애와 관계없이 좀 더 다양한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어요.


그런데 점점 활동을 하다보니 청각장애를 가진 아동들은 어떨까? 청소년들은 어떨까? 이런 생각들이 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하는 생각과 말 그리고 행동에 힘이 있으려면 계속해서 배워야 하고, 또 이제는 한 사람 단위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다각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봐야 되는 게 아닐까 하게 된 거죠.


지후트리님이 처음에 수화 아티스트로서 시작을 하게 된 계기는 되게 개인적인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하셨던 거잖아요. 그렇다면 지금은 좀 다르다고 봐야 할까요?

지후: 제가 요즘에 그런 생각 정말 많이 해요.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다고 있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되니까 저도 모르게 갑자기 제가 사명감을 갖고 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근데 지금은 사명감이랑은 좀 다르게 그게 책임감으로 바뀐 것 같아요.


농인 청소년에게 '수화를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다', '훨씬 더 다양한 세계가 있고 그런 세계를 확장시키는 어른이 있다'라는 걸 알려주고 싶거든요. 근데 그거는 사명감만으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이만 먹는다고 성숙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닌 것처럼 좀 더 책임감이라는 걸로 제 안에서 바뀌게 된 것 같아요.


말씀해주신 사명감과 책임감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후트리님 안에서 나뉘는 걸까요?

_(2).png 2015년 세계 장애 여성 대회 중 Kiss the World 켐페인 사진


지후: 이게 그전에는 계속 얘기한 것처럼 농인분들이 갈 수 있는 길을 내가 뚫는다는 그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이들이 좀 더 사회구성원으로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너무 청각장애인에 국한되는 활동을 한 게 아닌가?' 좀 더 포괄적으로 이 장애라는 상태에 대해서 사람들한테 알려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제가 장애인식개선 지도사 자격증을 딴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어요. 근데 이렇게 시선이 넓어진 데는 계기가 있어요. 2015년도에 세계 장애 여성 대회라고 해서 각국의 장애 여성 운동가분들이 와서 국회에서 컨퍼런스가 열렸었는데요. 그때 제가 디자인 팀장으로 일을 하게 됐었는데 그때 확 느껴지더라고요.


우리가 여성이 사회적 차별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최하 계층은 여성 장애인이라는 걸 제가 거기서 온몸으로 체감을 한 거예요. 그러면서 이거는 어떤 특정 문화만 어깨에 마구 짊어지고 갈 게 아니라 좀 더 포괄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한테 제대로 보여줘야 된다는 게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활동이 단순히 수화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위한 것도 아니고, 한 가지를 제가 전달하더라도 정확하게 알려드리고, 이 사람들이 어떻게 지금 이 사회와 싸우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보여주는데 노력을 해야겠다. 진짜로 그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이 뭘까를 고민하게 된 거죠. 그게 저한테는 책임감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냥 내가 이런 활동을 통해서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를 해야지' 였다면, 지금은 '좀 더 여러 사람들과 주변 상황을 고려해서 진짜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이렇게 바뀌신 거군요.

지후: 네 그때, 그때 진짜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좀 더 넓게 생각해야겠다. 사실 그러면서 제가 그림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된 거기도 해요. 그림만 할 게 아니라 이 수화를 살려서 퍼포먼스를 하게 되면 공연 장르에서도 이 수어에 관심을 갖게 될 거잖아요? 이런 식으로 좀 더 넓고 다양하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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