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DDIQUE

수화 아티스트 지후트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3)

예술가 지후트리의 작업 이야기

by Oddique Magazine

이번에는 작업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여쭤보려고 해요.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지후트리님이 하시는 그림 작업을 보면, 어떻게 보면 언어인 동시에 또 그림인 거 잖아요. 전 이게 되게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로 어떤 언어들을 그림으로 담아내는지 궁금해요.

51908697_844577932540654_863844132005118859_n.png [수화 그림] 지금 여기, 2019


지후: 제가 초반에 스토리텔링이 엄청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리기 전에 스토리텔링을 저는 먼저 해 보거든요. 예를 들면 그 당시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많이 키워드로 뽑아요.


물론 처음에는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단어들, 아버지를 추억하고 싶을 때 생각이 들었던 단어들로 시작을 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제가 그 장애를 가진 분들을 봤을 때 그분들이 하고 싶었을 것 같은 말들 아니면 차별을 받았을 때 하고 싶었던 말들, 이런 식으로 내가 서 있는 삶의 자리부터 둘러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아이디어를 얻어서 메모해 두었다가 제 생각을 보태서 이야기로 풀어보는 거죠. 그러면 이제 거기서 많이 쓰는 단어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 단어들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내죠.


말씀해주신 것처럼 그림이긴 하지만 그 접근은 굉장히 언어적으로 접근을 하시는 거네요?

지후: 그렇죠. 접근은 언어, 단어에서부터 출발해요


지후트리님의 그림을 보신 농인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지후: 어..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았었던 것 같아요. 일단은 저와 같은 비장애인, 청인이 수화언어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고, 농인분들 입장에선 내가 쓰고 있는 말, 언어가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거가 신기하신 것 같아요.


농인분들이 입장에서 봤을 때도 되게 신선하게 다가오시는 거군요.

지후: 처음에 전시장 오셨던 농인분이 저한테 그 말을 해주셨었어요. 자기가 쓰는 언어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옮겨질 줄 몰랐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게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고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 활동을 포기하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요.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있어요. 이제 수화를 도구화시킨다는 거죠. 농인도 아니고 청인이 농인 언어를 가지고 장난하는 것 같다고. 근데 농인분들의 피드백은 제가 더 많이 받아야죠. 그런데 반대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 분은 비장애인이셨고 수화 통역사셨는데 그냥 비난을 하시더라고요. 저한테 어떤 질문도 없이 자기 의견을 강요를 하시더라고요.


저도 당연하지만 그 현장에서, 실생활에서 수어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논문과 책을 찾아가면서 공부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을 먹는다는 거에 대해서는 사람은 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고, 환경도 다르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내가 충족시킬 수 없다는 걸 저도 당연히 알고 있고, 심지어 제가 예술하는 것도 우리 가족들이 처음에 이해를 못해서 욕 먹었는 걸요. 그래서 중요한 건 제가 하고 있는 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봐 준 사람들에게 집중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거는 그림에 대해서 또 하나의 궁금증인데요. 지후트리님의 수화 그림은 그냥 수화가 아니고 지후트리만의 스타일이 있잖아요. 색도 다르고, 문양도 있고요. 이렇게 풀어내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26655F37550781A42F.jpg [수화그림] Face Flower, 2014


지후: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색을 화려하게 쓰곤 하는데요. 그 이유는 손의 성격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손에 다가 색을 입혀서 성격을 집어넣으면 좀 더 호기심이 가잖아요?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저는 물음표가 손에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사람은 말할 때 어투라는 게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손의 스타일이라는 것이 어투랑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지후: 맞아요. 실제로 수화를 할 때 사람들의 말투처럼 수어를 하시는 손짓이나 동작이 다 서로 달라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처럼 수어를 정말 예쁘게 하시는 분도 계시고, 둔탁하신 분도 있어요.


그래서 그림이라는 게, 그림 안에 저의 세계관이 들어가는 거잖아요. 제가 그릴 때 예를 들어, 손끝을 뾰족하게 세운다거나 눈을 넣는다거나 이런 것들이 손의 성격으로 들어가는 거죠. 제가 눈 양쪽 좌우가 보통 사람 비해서 긴 편인데요. 그런 것처럼 이 손에도 생김새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런 화려한 색이나 문양들을 넣게 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얘네(손)한테 성격을 만들어 준 거죠. 하나의 캐릭터처럼요.


그럼 이번에는 퍼포먼스로 넘어갈까 하는데요. 처음에는 그림만 그리셨었는데 어떻게 퍼포먼스를 하시게 된 건가요?


지후: 일단 그림에서만 머물지 않고 퍼포먼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앞서 말한 것처럼 매체의 확장이에요. 그림은 평면인데 수화는 사실 되게 동적인 언어잖아요. 그래서 이걸 평면 밖으로 꺼내서 좀 더 생동감 있게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러면 그래 무용이든 춤이든 배워서 하자'라고 생각하다가 현대무용을 알게 됐어요. 당시에 차진엽 선생님이 하셨던 '리버런 불완전한 몸의 경계'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작품에서 세포가 50개가 분열되는 연출을 하고 싶으셨나봐요. 세포 50명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을 하게 됐죠.


그렇게 하면서 같이 있던 팀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제가 수화로 작업하는 걸 알게 되신 거에요. 그 연으로 춤추는 예술인분들을 엄청 많이 알게 됐고, 그러한 영역으로 조금씩 가게 된 거죠.


마찬가지로 퍼포먼스도 수어로 하시니까 언어적인 뜻을 담고 있는 거잖아요. 퍼포먼스 때는 어떤 언어들을 담아내시는지 궁금해요.

지후: 보통은 작품을 만들 때 음악에 동작을 맞추는 거는 두 번째고, 첫 번째로 작업하는 거는 어떤 메세지를 전달할 것인가예요. 동작을 하기 전에 글로 먼저 메세지들을 쭉 적은 다음에, 제가 맞춰서 수어로 번안을 하고 그 수어 동작이 이어지게끔 만들어서 음악에 맞추는 거예요.


이 부분도 그림 작업하실 때랑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지후: 네 저는 제 작업에서 스토리텔링이 정말 중요해요.


춤을 추는 댄서분들의 경우는 춤 동작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그에 맞게 지어져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수화 퍼포먼스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얼굴보다는 손에 포커스가 가야 하잖아요?

지후: 제가 퍼포먼스를 할 때는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으니까 그 단어에 있는 감정들이 손뿐만 아니라 표정에도 다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메세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동작을 하면 표정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이건 또 다른 얘긴데, 수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들이 있는데 손이 아니라 얼굴이 포커스되는 게 저는 개인적으로 아쉽더라고요. 얼굴을 잡으려다가 되려 손이 화면에서 사라져 버리더라고요.

지후: 맞아요.(웃음) 저도 그래서 촬영을 하게 되면 신경을 되게 많이 쓰게 돼요. 화면 구성 같은 것들을 촬영하고 편집하시는 분들한테 미리 언급을 드리는 편이에요.


보통 댄서분들이 추는 춤 영상에서는 전신이 다 보이게 풀샷을 많이 찍잖아요. 저는 손이 보여져야 되니까 상반신 위주로 보통 찍어요. 제가 손을 떨고 있으면 그 손의 떨림이 보여야 되는데 저 멀리서 찍으면 보이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럴 때는 담당자분께 거꾸로 손을 먼저 보여주시고 점점 뒤로 가면서 멀어지게 보이게 찍어달라고 따로 디렉션을 드리곤 하죠.


갑자기 든 생각인데 어떻게 보면 되게 중간자적인 입장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게 참 외로운 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후: 맞아요. 실은 엄청 외로워요. 제 입장을 이해해 줄만한 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저는 기존의 청인분들 입장에서도 다를테고, 농인분들의 시선에서도 같은 농인분들이랑은 또 다를 거예요.


초반에는 아무도 이해를 못하셨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그래도 제가 꾸준히 뭔가 계속하니까 받아들여 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계속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뭔가 시도하려고 하고 갇혀 있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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